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11/14, 조회 : 2076
제목  
 원조 교제를 하는 사람과 사귀다

원조 교제를 하는 사람과 사귀다 / 임정수




내가 커피숍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두세명의 남자들과 조용히 밀담을 주고 받으며 있었다.
'무슨 얘기를 저렇게 진지하게 하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사업(?)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애써 모른척 태연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그녀 앞으로 다가서자 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는 듯 얘기에 열중하는 그녀가 얄미웠다.
어느새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그녀는 자리를 권하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녀는 첫눈에 보아도 귀염상이 줄줄 흐르는 예쁘장한 여자이다.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사실, 목을 맬 정도로 따라다니거나 그렇게 심각하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꿩대신 닭이라고...
그런 그녀도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기에 나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나와 몇마디를 나누다가도 고개를 돌려 다른 테이블의 남자들과도 은밀한 얘기를 주고 받곤했다.
정말 기분이 나빴지만 한편으론 그러려니 생각하며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내용은 정말 심각한 수준인 것 같았다.

그들이 얘기하는 내용을 대충 정리하여 볼 때,
그녀가 다른 남자와 모텔로 들어가고나서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후 그들 두,세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자세히는 몰라도 어림짐작으로 짐작해 볼 때에
그들은 분명 원조 교제를 미끼로 상습적으로 돈을 갈취하는 파렴치하면서도 아주 질이 나쁜 공범들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른체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나한테까지 공갈 협박을 해댈 수 있는 그들도 아니었다.
내가 그들을 알듯 그들 또한 나에 대해서 이미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던 터라
섣불리 내게 도전을 해 올리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 중 누군가가 내가 그녀와 함께 자는 것을 알아도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나서질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나혼자서도 충분히 당해낼 자신이 있었으며
그녀역시 나를 건드리면 걷잡을 수 없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마도 그들에게 조심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처음 알게된 것은 그녀의 친엄마로부터 그녀를 소개 받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퇴근후 가볍게 한잔 하려고 들른 곳이 춘천의 <작은 거인>이란 캬바레인데,
거의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하며 들러서 새벽에 마칠때까지 술을 먹었으며
초저녁에 술을 먹을 때와 다먹고 나갈때까지도 흐트러지지 않은 정신으로 유유히 걸어나갔기에
3일째부턴 그곳의 사장이 같이 한잔하자며 내게 술을 사주었고,
그리하여 그녀의 친엄마도 합석아닌 합석으로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던 것이다.

사장과 함께 술을 마시다보니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주고받게 되었으며
그녀의 친엄마를 소개받게 되었는데 두사람은 부부 사이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가까이 지내는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렇게 알고 지낸 지 몇 주가 지났을까.
<작은 거인>에서 사장과 그녀의 엄마를 같이 만났다.
그런데 아주 어린 듯한 사람(그녀)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닌가.
그녀의 엄마는 친딸이라며 그녀를 소개 해주었고
즐겁게 놀다가 방까지 잡아놨으니 편히 쉬다가 가라고 했다.

소개를 시켜주자마자 방까지 잡아놓았다는 말에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나를 처음본 순간부터 사위를 삼고 싶었다나 어쩐다나...
암튼, 만난지 한시간도 못되어서 얼굴도 채익히기 전에 우린 호텔의 한 객실에서 서로의 알몸을 감상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맘에 들어도 그렇지 만난지 몇 달이나 지났다고...
(솔직히 한달도 걸리질 않았다.)
그렇게 소개를 해주고, 소개를 받고보니 어안이 벙벙했었지만
그녀가 무척 예쁘고 귀여우면서도 깜찍할 정도로 미인이었기에 과감히 뿌리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때 그당시엔 그녀와 내가 처음 만난 자리였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며 사랑하는 사이란걸 그녀가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손바닥만한 춘천땅에서...

다음날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때 열아홉살이었다.
열아홉...
그것도 그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경로로 알게 되었고
그녀도 이미 나외에도 수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한 전적(?)이 화려한 여자였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모른척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서먹서먹하게 지낼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두사람을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만나기도 했으며
그녀가 한수 아래라서 두사람이 만나더라도 트러블이 생기거나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 그녀의 본색(본업이라 해야 더 옳겠지만...)을 알게되니 왠지모르게 기분이 씁쓸했다.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라며 말리고 싶었다.
아니, 마음 한구석엔 이미 그녀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걱정하면서 그녀에게 모든 걸 다 잊어버리고 같이 살자고 했다.
당연히 그녀는 반대했다.
나를 남자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게 그녀의 답변이었다.
그녀만 원한다면 과거따위는 내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나 더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할 뿐이었다.
그녀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다독거리며 더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감싸주고 싶었다.
이것은 결코 한순간의 동정어린 마음에 그녀가 가엾어서 가진 생각은 아니었다.

이런 내마음을 그녀도 잘 알기에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두눈을 질끈 감고 과거를 들추어 내질 않으면 내입에선 그런 말이 새어 나올 리도 없었는데
그녀가 나를 믿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서 그런 면도 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녀만 결심하면 더이상 걱정할 것도 없었지만,
그녀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그녀를 존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언젠가 무엇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한가지 있다.
그녀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중 하나를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남자들과의 원조 교제를 통해 몇번의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다보니
이미 정신적으로 치유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도달해 버린걸 알게 되었다.
차츰 안정을 되찾고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려고 하면 어느정도 치유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지만
그녀 스스로가 그 틀에 얽매여 있으니...

그녀는 이미 치유 단계를 건너 뛰어 올가미 같은 덫에서의 생활을 즐기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그런 걸 찾아서 헤매고 다니는 걸 보니 더이상은 붙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그녀의 일기장을 슬쩍 엿본 적이 있다.
그녀가 엄마를 만나러 나가고 없는 날에 그녀의 옷가지들을 정리하다 우연히 일기장을 발견하곤 들추어 보았다.

주로 낙태를 하거나 유산한 아픔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물론 이런 생활에 대한 염증같은 것도 토해내고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가 헤어날려고 하질 않는 것 같았다.

(하늘나라로 가버린 나의 아가야! 엄마가 잘못했다. 정말 미안해...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고 너 하나도 지켜낼 수가 없었지만,
다음에...이다음에...엄마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심판을 받으면,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도 너를 지켜내지 못한 벌을 달게 받을께.
......
아가야! 정말 미안해....사랑한다...나의 아가야...)

명동 시내에서 안면이 있는 선배를 만났다.
오랫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선배는 내가 그녀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
나에 대한 소문은 이미 화천에까지 나있어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것이다.

"동생! 이젠 그여자와 만나지마라."
"예? 왜요?"
"암튼, 만나지 말라고 하면 만나지 마라."
"지금 그사람하고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잘 아시잖아요?"
"알지, 아니까 헤어지라는 거야."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여자...나하고도 잤다."
"....."
"나하고도 잤는데...혹시, 구멍 동서가 뭔지 알지?"
"네?"
"나하고 구멍 동서가 될래?"
"....."
말문이 막혔다.

나라는 사람이 단순해서인지 지나온 과거따위에 연연해 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얘기를 하는데엔 더이상 말을 못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냥 듣고만 있었다.
선배는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었노라며 기분나쁘게 생각지마라는 당부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나는 한참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용히 자신을 돌이켜 봤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과거가 있는 여자면 어때.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저런일도 생기게 마련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갔다.

방문을 열고 설어선 순간 놀라고 말았다.
아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텅 비어서 썰렁해진 방안에 나홀로 덩거러니 내던져진 채 서있었기 때문이다.

방바닥에 놓인 한장의 편지를 주워 들었다.

<아무래도 우린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이젠 나를 잊고 J.A 언니랑 행복하게 사세요.
그게 내가 원하는 마지막 소원이에요.
- 당신의 영미...>

더이상은 그녀가 그런 짓을 하며 살아선 안되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찾아 헤매었지만,
그녀는 이미 그런 일에 길들여져 빠져나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서서히 그녀를 잊어갔다.
어느덧 내게 다가온 J.A와의 만남으로 그녀의 모습, 그녀의 체온, 그녀의 그림자까지도 잊고만 것이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지금 이순간까지도...



ps: 1989년 춘천의 김영미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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