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10/23, 조회 : 1936
제목  
 가을비 내리는 날에

가을비 내리는 날에 / 임정수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집을 나서는 길에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운전대를 부여잡고 얼마나 달렸을까..
짙은 어둠을 뚫고서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치앞도 분간이 안갈 정도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왠지모를 두려움을 느끼면서 비상등을 켠채로 천천히 달렸다.

때로는 덩더쿵 덩더쿵 하면서 노랫가락에 장단을 맞추듯
흥겹게 들리기도 하던 가을비가
어떨 땐 차체를 두드리며 위협하기도 해서
응겹결에 찬물이라도 한바가지 둘러쓴 모양으로 잔뜩 겁을 집어먹기도 한다.

그다지 빨리 달리지도 않았는데 수막 현상으로 차가 물위를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환한 대낮에도 빗속을 달리며 운전을 하기가 어려운데
깜깜한 새벽길에 정신을 집중하여 운전을 하려니
내 의지와는 달리 차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다.

나도 운전이라면 어느정도 잘한다고 자부를 하는 편이지만,
오늘처럼 빗길에 겁을 집어먹기는 난생 처음이다.

역시, 방어 운전이 최선이지.
달리는 내내 그냥 돌아갈까 아님, 가던 길을 계속 달릴까를 고민하다
오늘 하루는 맘 편히 쉬기로 하고 차를 돌렸다.

일이 안풀리거나 답답한 기분이 들때엔 가끔씩 쉬어가며 일을 하기도 한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일도 좋고 돈도 좋지만
처량히 비내리는 날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는 것 같아 청승 맞기도 하고
자신이 비참하다는 걸 느끼기도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자주 쉬는 날이 많은 셈이다.
뭐, 굳이 미신을 지킨다던가 이것저것 잘 따지고 챙기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같이 어렵고 힘든 때에 일부러 그런 걸 따질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걱정인데 일거리가 있어도 이렇게 허황된 욕심을 부리고 있으니...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답답하지가 않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정말 돈에 쪼달려서 일거리를 걱정한다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올빼미처럼 일을 하려고 발버둥칠텐데...

나?
나는 일거리만 있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일에 대한 재미에 푹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돈을 벌고 모으는 재미에 빠져서도 더더욱 아니다.

사람은 자고로 부지런해야 하고
몸이 건강할 때에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다보니
어떤 일이든 무슨 일이든 가리질 않고 겁없이 달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이 힘들고 어렵고를 떠나 아무리 벅찬 일이라도
처음부터 할 수 없다, 도저히 못한다며 쉽게 포기하질 않고
힘들겠지만 일단 하는데까진 해보자는 심사로 부딪히고 보는 성격이다 보니
일에 대한 겁이 없는 편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정말이지 운전을 하기가 여간 힘드는게 아니다.
항상 안전 운전, 방어 운전으로 조심을 하곤 있어도
기분이 찜찜하고 일을 하기 싫을 땐 어쩔 수 없이 하루 일과를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

되돌아 오는 길에 비가 어느정도 그치는 것 같아서 다시 방향을 돌렸다.
이정도로만 내리다 그쳤으면 하는 바램으로 목적지를 향해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새벽이지만 평상시 이시간대에 차들이 많이 다녔었는데...
오늘따라 차들이 눈에 띄질 않아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했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어 자신을 돌아다본다.
비...
이깟 비가 뭐길래 나의 하루 일과가 좌지우지 되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비란 존재는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존재이고
가뭄에 애타는 들녁에서나 우리가 일상 생활을 통해 먹고 마시는 소중한 물또한
빗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세상 모든 만물이라면 풍족한 일조량에도 영향을 받고 있지만
수질(빗물)또한 무시할 수는 없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이란 걸 다시 한번 느껴본다.

좀 전에 차를 되돌렸던 부분에 이르르자 또다시 굵어지는 빗줄기...
밤새 꿈자리도 뒤숭숭하더니 역시나 오늘은 가지 말고 쉬어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다.

그래, 오늘은 이쯤에서 쉬도록 하자.
차창을 두드리는 빗줄기가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오늘은 가지 말고 쉬라했다 아이가.'

하하하...
갑자기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간다 가!>

과열된 엔진의 열기로 인해서인지
뿌연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본넷트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어쩐지 먹음직스런 김치전으로 보인다.

'그래, 오늘은 일찌감치 김치전이나 해먹어야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조개와 잘익은 김치를 꺼내어 전을 부쳐먹을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가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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