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08/09, 조회 : 1778
제목  
 타락의 늪

타락의 늪 / 임정수





"같이 갈데가 있어."
"어딜?"
"가보면 알아."
가냘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차에 올랐다.
"어딜 가는데?"
"조용히...아무말 말고 가자."
"알았어, 치..."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그녀를 만나지 않으려 했는데,
사람의 인연이란 앞날을 알 수가 없어서 또 일을 저지러고 말았다.
도심을 벗어난 나의 애마는 물만난 물고기마냥 신나게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한적한 곳에 한눈에 들어오는 건물 하나...
모텔이었다.
어느 누구나 부담없이 왔다가 쉬어갈 수 있는 지상낙원이었다.
"가자고?"
"응."
고개를 떨군 그녀를 이끌고 모텔로 들어섰다.
처음으로 모텔을 찾은 건 아니지만 낯설기도 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기분은 묘하기만했다.

모텔에서 지정해준 방으로 갔다.
"안돼."
"안된다구? 왜 안돼?"
"그냥..."
"마지막이야, 그래도 안돼?"
"싫어, 마지막이라는 그말..."
"그럼, 앞으로도 계속 만나자고?"
"....."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잖아."
"언젠 꼬리를 걱정했나 뭐.."
"겁날 건 없지만, 우리 관계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좋을게 없잖아."
"....."
그녀의 두눈엔 맑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우는거야?"
"아니..."
"그럼, 왜그래?"
"미안해...난, 자기가...자길 보내고 싶지않아, 그래서..."
"알았어, 이젠 울지마."

그녀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위로 내려놓았다.
"자기야.."
"응..."
"내가 자길 피하려는 이유는 한가지 뿐이야. 그건 자기도 잘알잖아."
"알아, 하지만....이렇게 끝내는건 너무나 가혹해."
"그렇다고 계속 만나는 것도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
"자긴 아이들도 있잖아, 가정을 잘 지켜야지, 안그래?"
"....."
"보고싶을 땐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자기가 원할 땐 언제든 가능하잖아."
"....."
"나도 이대로 우리가 끝나는 걸 원치않아. 내가 얼마나 자길 사랑하는지 잘 알지?"
"응..."
"사랑해!"
"나도..."

그녀의 입술은 언제나 달콤했다.
촉촉히 젖은 눈빛과 달콤한 입술...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도 내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언제든 부르면 아무말없이 달려와준 그녀가 좋았다.
그렇기에 더욱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자기...만나는 사람있어?"
"아니, 왜?"
"그냥..."
"혹시,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맘이 변했을 것 같아서 그러는거야?"
"....."
"나한텐 자기밖에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정말?"
"응, 지금으로선..."
"고마워요.."
"고맙긴..."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땀은 침대의 하얀 시트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매케하면서도 끈적거리는 땀내음으로 방안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내품에 안긴 그녀를 찬찬히 보았다.
행복한 표정으로 가는 숨을 고르는 그녀의 숨소리 조차도 사랑스럽다.
이대로,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출 수만 있다면...

"자기..."
행복에 도취된 듯한 그녀가 두눈을 뜨면서 대답한다.
"으응?"
"내가 그렇게 좋아?"
"응...자기가 없으면 단 하루라도 못 살 것 같아."
"정말이지?"
"응..."
그녀가 두팔로 목을 감으며 매달린다.
"더운데 이렇게 꼭 달라붙으면...숨도 못 쉬겠어."
"이대로...우리 이대로...죽어버릴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구렁이가 온몸을 칭칭 감듯 그녀의 하얀 두다리가 꽉 조이며 감겨온다.
"나.. 정말이야, 자기없이는 못살아."
"내가 분명히 말했지, 더이상은 욕심내지 말자고..."
"하지만..."
"됐어, 더이상 그러면 가만히 안있을거야."
"가만히 안있으면 어떡할건데?"
"자꾸그러면...이젠 안만날거야."
"알았어, 알았으니 제발 그런말은 하지마. 응?"
"그래, 서로가 더이상 힘들어 하지말자."
"....."
"이리와"
그녀를 힘있게 끌어 안았다.
"사랑해!"
"....."

우리 두사람에겐 서로를 간절히 사랑하기에 애정이라 하겠지만,
이건 분명 '불륜'인 것만은 틀림이없다.
남이 알면 <넘사>고 내가 알면 <우사>라고 했던가.
더이상의 불륜은 저지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인연의 고리를 끊질 못해 이젠 그 무엇으로도 자르기 힘든 강철 사슬로 변해버린 것만 같다.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이라 다짐했지만,
또 한번의 사랑 앞에 이렇게 허망히 무너질 줄이야...

"자기야..."
"응?"
"저기...또 할 수 있어?"
"또?"
"응..."
"나도 좀 쉬어야지, 내가 무슨 기계도 아니고..."
"....."
"잠시만...기다려봐."
"응..."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가슴에서 아랫배로...허벅지로...
갑자기 몸을 일으킨 그녀는 어느새 내몸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야생마를 탄 야성녀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몽롱해지는 정신은 자꾸만 이성을 잃지 않으려 집중했다.
조금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끝없는 나락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만남, 바르지 못한 인연을 끊지못한 미련 때문일까.
어쩌면 지금 내가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에 대한 벌을...
그녀의 몸짓에서, 손짓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사랑을 주체하질 못하고
이렇게 벌을 받고있나 보다.
'그래, 정녕 끊을 수 없다면 이대로 놔두자, 이것이 나의 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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