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07/28, 조회 : 1985
제목  
 지암리에서의 추억

지암리에서의 추억 / 임정수






누군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몇시지? 벌써 이렇게 되었네.'
다들 소풍을 가는 어린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용산 삼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렸다가
달려오는 버스를 세워 차에 올랐다.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춘천댐 하류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드리우고 모여들 있었다.

우린 춘천댐과 오월교를 지나 지암리에서 내렸다.
지암천 유원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라
그곳엔 이미 수많은 피서객들이 모여있었다.

막상 소풍을 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어디론가 떠날것만 생각했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걸 준비해야할지도 모른체
무작정 나왔기에 아쉬운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헤엄을 치면서 노는 사람들,
고무 보우트를 타고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곳곳에서 낚시를 하거나 초망을 던지며
물고기를 잡는 모습들도 많았다.

낚시엔 일가견이 있다며 큰소리를 쳐놓았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낚시를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곳으로 오기만하면 고기는 얼마든지 잡아주겠다며 큰소리를 쳐놓고선
도대체 고기는 언제쯤 잡을 거냐는 표정과 원망서린 눈빛으로
다들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렇다고해서 주눅이 들거나 기죽을 내가 아니지.
이왕 이렇게 된걸 어떡하겠나.
금방 고기를 잡아올테니 불이나 지펴 놓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옆에있던 기훈이 형이 낚시 도구는 안가지고 가냐며 불러 세운다.
"그런건 필요없어요. 그냥 소주하고 빈잔만 있으면 돼요."
소주와 빈잔을 빈 바께스에 담아 수많은 인파 속으로 파고 들었다.

'어디로 갈까?'
그렇다고 사 올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일단 초망을 던지는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많이 잡았습니까?"
"아뇨, 우리도 금방 왔어요."
"네.."

슬쩍 다른 곳을 둘러보니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분들께서 초망을 던지고 계시는 게 아닌가.
'옳다, 됐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웃는 얼굴로 다가가 인사했다.

"많이 잡으셨습니까?"
"예, 많이 잡았어요."
커다란 훌라에 잡아놓은 고기가 넘칠 정도로 담겨져 있었다.
'우하하하...'
뭔가 좋은 조짐이 보였다.

일단 술부터 권했다.
술을 따르며,
"실력이 없어서 고기를 못잡았더니 안주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안주는...이렇게 고기를 많이 잡았는걸요."
"그래도...술을 권하면서 안주가 없으니 좀 그렇네요."
"아참, 우린 재미삼아 잡는 것이니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 가요."
"네? 정말이십니까? 아이쿠,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가 밥하고 매운탕을 맛있게 끓일테니 같이 드시도록 하시죠."

서둘러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어떻게 되었어요?"
전투 중대의 정하사가 나를 보더니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되긴, 많이 잡았지?"
"예? 금방 가서 뭘 잡아요?"
"일단 한번 보고나서 얘기해."
"우와~"
다들 좋아서 난리다.

"또 필요하면 얼마든지 얘기하라구."
비록 내가 직접 잡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만큼은 째지도록 좋았다.

갓지은 밥과 얼큰한 매운탕을 끓여서 맛있게들 먹었다.
좀 전에 고기를 주신 노인분들은 춘천의 로터리 클럽 회원분들이시란다.
적당히 취기가 도신 회장 어르신께선
이쁜 경리 아가씨도 있으니 한번 와서 꼬셔보라며 농담을 다 하신다.

누군가의 제의로 즉석에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먼저 작업에 성공한 사람에겐 부상이 따라야 하겠지만
부상은 아무도 얘기하질 않는다.

'부상이 없으면 어때? 작업만 성공하면 되지.'
우리 일행이 많았으므로
이왕이면 여럿이서 온 아가씨들을 찾아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곤 대여섯명의 아가씨들을 발견하곤 뛰어갔다.
"어디에서 왔어요?"
"서울에서 왔어요."
"멀리서 오셨군요."
"....."
"아직 식사 전이시죠? 우리도 놀러왔는데 함께 식사라도 하시죠."
생각외로 그녀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내가 그녀들을 데리고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가니
어떻게 구해왔는지 로터리 클럽의 회장 어르신께서
가마솥 뚜껑을 구해 오셔서 뒤집어 놓고 고기를 굽고 계셨다.

"서로 아는 사이에요?"
회장 어르신께서 서울에서 왔다는 아가씨들에게 묻는다.
"아뇨, 방금 첨 만났어요."
"큰소리치고 나간지 5분도 안돼서 성공하다니...정말 놀랄 일이네."
내가 데려온 아가씨들과 내가 눈이 마주치자 서로 말없이 웃었다.

"어떻게 했어요?"
누군가가 비결이라도 알고픈 심정으로 넌지시 물어본다.
"그냥...하면된다. 안되면 되게하라. 이것이 내 생활 신조니까...
무조건 밀어 부치면 되는거지."

어르신들께선 고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잡아주셨고,
우린 매운탕과 구이를 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었다.

아쉬움이 가득한 즐거운 휴일 한 때를 보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와서도 그때의 기억이 쌩쌩한 걸 보면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었나보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생활화 되던 때라면 몰라도
삐삐 조차도 나오지 않았던 때라
굳이 그녀들의 연락처를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귀찮게 묻고 또 물었더라면
마지못해 연락처를 가르쳐 줬을런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연결이 안되는 엉터리 전화번호였겠지만...

'지금거신 전화번호는 잘못되었거나
연결이 되지 않는 번호이오니 다시 한번 확인을...'

안봐도 뻔히 알만한 레파토리가 소설처럼 뇌리를 스친다.

낯선 사람들이 만나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것으로 만족할 줄도 알아야지
괜히 미련을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비릿한 바닷내음을 맡으니
지암리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하얗게 떠다니는 구름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모습에
그때에 만났던 사람들도 주마등되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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