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04/21, 조회 : 1772
제목  
 어떤 동냥인

어떤 동냥인 / 임정수





시장엘 갔다.
장날이라 무척 혼잡한 시장에는 먹을거리도 많고 이것저것 살 것도 많다.
모처럼 시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걸어서 갔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 대기 중인 횡단보도에 서서 기다리는데
왠 봉고차가 서행으로 다가오더니 중년의 남자를 내려놓고 가던 길을 간다.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는 없겠지만,
횡단보도에서 내린 그를 보며 주위의 많은 사람들 또한 나처럼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는 듯 했다.

중년의 남자는 제대로 씻지도 못한 사람처럼 꿰째째하고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게
일부러 그렇게 꾸미라고 시켜도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없어 보였다.

그는 횡단 보도를 건너더니 어느 건물로 들어갔고,
나는 누굴 만나기로 해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런데, 잠시후에 나타난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멀쩡히 잘 걸어다니던 그가 장애인처럼 고무로 된 바지(?)를 입고
한 손엔 소쿠리를 들고서 건물에서 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고무로 된 바지를 입었으며 한 손엔 허름한 붕대를 칭칭 감고
다른 한 손엔 소쿠리를 들고서 기어다니는 폼이 동냥을 위해서 일부러 꾸민 듯했다.

호기심도 발동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쪽에서 지켜 보기로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니는 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지폐를 주기도 하고 동전을 주기도 하였는데,
제법 많은 돈이 모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가 나왔다.
동냥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얘길 했더니 친구는
"저사람 또 나왔네, 저렇게 동냥을 해도 자기가 다 쓰는 것도 아닌 모양이더라."
"왜?"
"누군가가 봉고차로 데려다놓고 동냥을 해놓으면 그돈을 다 가지고 가거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다리 인대를 끊어버리고 동냥한 돈을 갈취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래? 난 처음 듣는 말인데.."
"저 사람 뿐만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있어. 오늘은 장날이라 여기저기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갔을거야."

가만히 듣고 보니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지 육신이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 흉내를 내는 것도 그렇지만,
힘들고 어렵게 동냥한 돈을 고스란히 빼앗길 걸 생각해보니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사람들은 절대로 보태어 주면 안돼, 우리가 도와 줄 수록 자꾸만 저러고 다닌다니까."
친구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며옴을 느꼈지만 일리있는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하긴, 어쩌면 한푼 두푼 도와주는 인정에 오히려 사람을 망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친구와 얘길 나누는 사이에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다 보니 중년의 그사람이었다.
누군가 그사람이 봉고에서 내리는 걸 지켜보고 장애인 흉내를 낸다며 신고를 하여
가까운 파출소에서 출동을 한 듯 싶었다.

"에헤~ 이 양반들! 오늘이 장날 아뇨? 장날인데 좀 봐주면 안돼?
나도 먹고살기 위해서 나온건데...그냥 좀 봐 주쇼."
이미 상황을 짐작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의 경찰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를 말리고 있었다.
"우리도 신고가 들어와서 이러는 것이니 잠시 피했다가 나중에 다시 오지요?
우리 입장도 이해를 해주셔야지요."

그래, 맞는 말이다.
어차피 저런 사람들은 무조건 내 쫓는다고 해서 안 올 사람들도 아니다.
좋은 말로 융통성있게 타이르고 달래어서 해결하려는 경찰관의 노력이 가상했다.

중년의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투덜거리며
자신이 가지고 온 짐가지를 챙겨서 어디론가 간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실없는 웃음을 웃었다.
그가 안되었다는 마음보다는 다 죽어가는 몰골로 엉금엉금 기어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짐가지를 챙겨 걸어서 가니 놀라기도 하고
어이없이 당했다는 묘한 감정에 웃음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저런 사람들 때문에 정말로 도움을 받아야 될 장애인들이
제대로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온갖 편견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오늘 장사는 공쳤다며 투덜거리면서 가는 그의 걸음걸이가 내마음을 아프게 하였지만,
세상엔 별별 방법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다 있다며 애써 냉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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