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04/05, 조회 : 1861
제목  
 산행에서 만난 사람 (ㅊ)

산행에서 만난 사람/ 임정수





모처럼 하루 쉬고싶었다.
아침 일찍 가까운 산으로 갔다.
집 뒤에있는 왜성산으로 올랐다.

맑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생각하며 올랐지만
막상 산공기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공기가 아니었다.

도심의 찌든 공해에 오염되어서일까.

황사 바람이 불어서
낮은 기온의 영향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렇다.
어쩜 황사 바람이 불어서 맑아야 할 공기가 맑지도 못하고
목안에선 정수기의 필터처럼 무언가 걸러지는 느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상을 노리는 일부 사람들이 있어
공터였던 곳곳엔 어느새 지나다닐 길 조차도 없을 정도로
빽빽히 텃밭을 일구어 놓고 있었다.

예전엔 그래도 답답한 기분에 산을 오르면 공터가 넓어서라도
가슴이 뻥~하고 시원스레 뚫리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산으로 오를수록 더 답답해지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쉽게 내려놓질 못하겠다.

멀리 만덕의 금정산 줄기를 바라보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뿌옇고 희미하게 보이는
산은 지금의 내 기분처럼 답답함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강을 내려다 보니 상쾌한 봄바람과 더불어
함께 춤추고 어울리는 파도와 강물이 넘실거린다.

강!
어릴 적부터 강가에서 살았으며
언제나 낚시를 하고 재첩을 주우며 강과 더불어 살았었는데...

갈대를 스치며 산으로 휘감아 타고 오르는 강내음을 맡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고 답답하던 가슴 속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한 기분이다.

역시 강은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새로운 삶을 선사해주는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강을 내려다 보며
텅 비어있는 나의 작은 그릇에 온갖 봄내음과 바람과 강을 가득 담았다.

강을 내려다보면 볼수록 기분이 맑고 상쾌해지는 것은
강이 가져다 주는 신비감이 커기에 더욱 잘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정상을 오르다
나를 보곤 가까이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네, 안녕하세요."

아무리 처음보는 낯선 사람이라도 산에선 먼저 말을 건네면
누구나가 다 산동무가 될 수 있는 가 보다.

"이 근처에 사시나 봐요?"
"네, 바로 저기 아파트에 살아요."
"네...저는 고속도로 건너 저쪽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네.."
"아침 공기가 맑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그렇죠? 요즘은 오염이 심해서 그럴거에요."

한번 친해지면 그렇게 자상하고 인간성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는 '나'이지만,
막상 무뚝뚝한 내가 먼저 말을 건네니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긴 자주 오시나봐요?"
"아닙니다. 오랫만에 올라와봤습니다.사는게 바쁘다보니.."
"네..저도 자주는 못 오거든요."
"네..."
"근데...무슨 일을 하세요?"
"저요? 실업자예요. 하하하..."
"....."

아주머닌 보온 물병을 끄내더니 커피를 따라서 한잔 건네준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께요."
"별말씀을요."

내가 하던 사업(?)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자신감있게 큰소리로 무엇을 하노라며 대답을 했을텐데,
내세울 게 없는 지금으로선 뾰족히 말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살아온 얘길 들려주었다.
그리곤 앞으로 귀촌을 해서 야인으로 돌아가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더니
정말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있노라며 자신의 일인양 좋아하는 것이다.

하긴...내가 생각을 해봐도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계획대로만 된다면 나의 아이템은 그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기에
앞날을 내다보면 정말 꿈같은 계획인 것이다.

자신도 남편과 의논해서 귀농을 하고픈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남편과는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는다고 한다.

도시에서 편하게 문화 혜택을 누리다
답답하고 불편한 시골로 들어가 살려고 하면 찬성하는 사람들이 몇명이나 될까.

그동안 확실한 정보도 없이 귀농을 꿈꾸기만 했었는데,
오늘 나를 잘 만나서 소중한 정보를 듣게되고...
미래에 대한 확실한 버젼을 보았노라며
이젠 남편에게 자신있게 권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좋아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표정을 보니 순진무구하다고 해야하나...
어린 아이처럼 티없이 맑고 순수한 모습을 엿보는 듯 하여 나또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린 많은 얘길 나누었다.
비록 다음에 또 산행길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약할 수는 없었지만,
잠시나마 함께 마음을 터놓고 얘길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오늘 산행이 값진 산행인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커피 한잔을 마실 때쯤 전화가 걸려왔다.
좀 전에 산행에서 만난 그 아주머니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니,
내가 먼저 귀촌하여 자릴 잡거나 혹시라도 그녀가 먼저 자릴 잡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연락처를 주면 누가 먼저 자릴 잡던 도움이 되질 않겠냐고 해서
건네주었던 명함을 보고 전화했다는 것이다.

집으로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나의 문학 서재로 들어와
내가 틈틈이 써놓았던 글을 둘러보는 중이라고 하면서 정말 생각만해도 행복하다고 한다.

조만간 엑기스를 주문해서 먹을 것이고 주위에 소개도 많이 하겠노라며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내자고 한다.

내가 여자도 아닌 남자인데 연락을 하며 지내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큰소리로 소리내어 웃는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편하게 생각해야지...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이상한거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남편이 나를 잘 안다고 했다.

내가 예비군 소대장으로 지원하여
십여년이 넘도록 한 동네에서 예비군 관리를 했었고,
청년회니 뭐니... 나름대로 봉사 활동을 좀 해서인지 얼굴이 알려져 있는 편이라
쉽게 알아본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먹고 살기에 바쁜 세상에
나처럼 비슷한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대하고 보니
왠지 모르게 믿기지가 않았지만,
그 꿈을 함께 펼칠 수 있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는듯하여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642  미친놈!      임정수 2008/03/27 1766
641  검정 고무신(ㅊ)      임정수 2008/03/28 2118
640  아버지 (ㅊ)      임정수 2008/03/30 1832
639  고무줄 몸무게(2) <ㅊ>      임정수 2008/04/02 1907
 산행에서 만난 사람 (ㅊ)      임정수 2008/04/05 1861
637  외로운 아침에 (ㅊ)      임정수 2008/04/07 1942
636  그녀는 출장중      임정수 2008/04/11 1766
635  봄비(ㅊ)      임정수 2008/04/16 1843
634  HTH 택배(ㅊ)      임정수 2008/04/17 1850
633  사월의 향기      임정수 2008/04/18 1956
632  티코 아지매 (2010년 가을호 대한 문학 세계 수필 산책 코너 수록)      임정수 2008/04/20 2044
631  어떤 동냥인      임정수 2008/04/21 1763
630  A씨의 행복      임정수 2008/05/16 1680
629  작업이 통하는 그날을 꿈꾸며      임정수 2008/05/19 1817
628  귀농의 꿈을 펼치리라      임정수 2008/05/20 1675
627  니이가다 현에서(2)      임정수 2008/05/22 1855
626  추억의 ATT 훈련      임정수 2008/05/23 2484
625  너를 보내고 나는 울었다.      임정수 2008/05/24 1653
624  햇살을 꽃피우는 마음으로      임정수 2008/05/27 1731
623  내 이름은 임정재(林正材)      임정수 2008/05/28 1890

 [1][2][3][4][5][6] 7 [8][9][10]..[3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Ol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