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03/22, 조회 : 2009
제목  
 우렁이 한마리 키워볼까? (ㅊ)

우렁이 한마리 키워볼까? / 임정수




요즘처럼 일에 치이고 삶에 치여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또다시 없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하는 일들이 잘 풀리고 몸도 마음도 편해져야 하는데,
갈수록 더 힘들어지니 정말 사는게 짜증난다.

봄이라 몸도 나른하고 날씨마저 더워지니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도 없어 은근히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안나온다.
그래서 답답하다.

지난 여름부터 본의 아니게 정착할 곳을 찾아다닌답시고
여기저기로 떠돌다시피 헤매었던게 허사라고 생각하니
그저 자신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없이 초라해보일 수가 없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해도 번듯하게 잘 차려놓아야 하고
성공을 해도 크게 성공을 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남은게 없는 지금으로선 따라지 인생을 살은 것 같아
마냥 한심하기만 하다.

날씨는 점점 더워오는데
앞으로 다가올 여름을 생각하니 갑자기 더워진다.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 작가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안부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나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도
용기을 심어주는 작가님의 격려의 말에서 크나큰 희망을 품게된다.

반드시 재기하는 날이 있으리라.
열심히 땀흘리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오늘을 이야기하며
웃는 그날이 있을 것이다.

마음이 심란하여 커피 한잔으로 심신을 달래고 있으려니
우렁차게 핸드폰의 신호음이 울린다.

택배 기사 아저씨의 전화다.
집앞이라며 물건을 가지고 왔단다.
무슨 물건이지?
주문한게 없는데...

받아보니 정말 반가운 물건이다.
사실, 도착한 물건의 내용보다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사람으로부터의
한자락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 그게 더 반가웠다.

아주 오래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사람으로
나와는 의남매를 맺은 여동생에게서 온 물건이었다.

내용물을 뜯어보니 자연산 생전복과 까놓은 은행,
직접 만든 듯한 밑반찬이 차곡히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전화를 하려다 그녀의 폰으로 전화를 했다.
혹시라도 다른 가족들이 받아서 그녀의 입장이 난처해지지나 않을까 하여
폰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무척 오랫만에 들어보는 음성이었지만,
생기있는 목소리를 들으니 잘 지내는 듯하여 안심이 되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는 것에만 익숙해서
무엇을 받아본다는 건 상상도 못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받고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묘한 기분이라고 표현해야 더 옳을 것 같다.

오로지 주는 즐거움, 잘받았다는 전화 한통에도 행복하기만 했었는데...
못받을걸 받은 것도 아닌데
왜 이다지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자신이 수그러드는지 모르겠다.

고맙다는 말에 이제부턴 자주 챙기겠다고 한다.
나보다는 신랑에게 더 잘하라며 극구 사양하며
가끔 어떻게 지내는지 목소리라도 듣고 지내자고 하니 큰 소리로 웃는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살다보면 마음대로 잘되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다.

미리 약속을 정하고 지내기 보다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살아가면서 생각이 날 때에 전화라도 주고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낙이지 않겠는가.

회초장을 만들어 모처럼 전복으로 회를 뜨서 먹었다.
남는걸론 전복죽을 쑤었다.

한상 가득 푸짐한 상차림에 한동안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참에 우렁이 한마리 키워봐?'
하하하...
우렁이를 한마리 키워볼까 생각하니 내가 제비라도 되는 기분이다.

나는 그런건 싫다.
제비...
왜 하필이면 제비일까?
암튼 그런 상상만으로도 싫다.

지금처럼 잊고 지내다 가끔 전화상으로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족하다.
언제나 한이불 속에서 함께 숨쉬며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런 우렁이는 없을까?

내가 우렁이가 되든 아님, 나도 우렁이를 한마리 키워보고 싶다.
평생을 함께 할 우렁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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