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01/05, 조회 : 2196
제목  
 시골 인심(ㅊ)

시골 인심 / 임정수





언젠가 귀농을 꿈꾸며 낯선 시골로 떠났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 지방을 다니다 보니 한번 갔었던 곳을 두어번 더 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몇번이나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어서
비록 웃으며 인사말을 걸어보진 않았지만,
매번 그곳으로 갈 때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한번은 그동네를 찾았을 때에 몇번 마주쳤던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조용히 비닐 봉지 하나를 건네는 것이 아닙니까.
겉모양으로 봐선 한웅큼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 처럼 소중히 다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죠.

'대체 무엇일까?'
'분명 나에게 주는 것 같은데 저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이지 힘들게 고민도 많이하고 갈등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어른이 주시는거니까 일단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별생각없이 받았죠.

"무엇입니까?"
그러면서 받았는데, 아무런 말이 없는 것입니다.
'에이 모르겠다.
받아서 보고 필요없는 것이면 나중에 이동네에서 나가는 길에 버리더라도 일단 받고 보자'.
그렇게 생각하곤 받았지요.

검은 비닐 봉지에 들어있는 것을 받으면서 무척 가볍다는 생각만 했을 뿐
별다른 생각없이 고맙다는 인삿말을 남긴채 돌아서 가려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 분은 어느새 저의 앞에서 손을 내밀고 서있는 것입니다.
"예?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만원이요.."
"예? 뭐가 만원이나 한다는 겁니까?"
"그거..만원이요."

'참나...'
한웅큼도 안되는 비닐 봉지에 담긴 것이 직접 잡은 다슬기라며
만원을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주시는거니까 할 수 없이 받았습니다만, 사실 저는 이런 게 필요없습니다."
그러면서 받은 비닐 봉지를 앞으로 내밀었더니,
"젊은 사람이 사려고 받아놓고선 도로 물리자고 그런다."며 큰소리를 치는 겁니다.

미친개에게 물린 셈치고 만원을 주고 서둘러 그동네를 나왔지요.
아무리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꾹 참고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어디 똥이 무서워서 피하겠습니까. 냄새나고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지...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도 겪고 저런 일도 겪게되는 것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처럼 다 좋은 사람들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오늘은 분명히 액땜을 하였다는 생각만 하였을 뿐 다른 생각은 하기도 싫었습니다.

본의아니게 얼렁뚱땅 바가지를 쓰고 말았습니다만,
검은 비닐 봉지를 보면 볼 수록 화가 나고 울화통이 치밀어서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막상 버릴려고 보니 마땅한 곳이 없더군요.
길옆에 계곡 물이 흘렀지만,
혹시라도 누군가가 저를 보게되면 쓰레기를 방류하는 것이 아닌지,
괜한 의심을 받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순찰차가 있어서 세운 뒤에 자초지종을 얘기했지요.
그리곤 필요가 없는 것이니 맘에 있으면 가져가라고 했더니,
'이게 왠 횡재냐'며 받아들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인사치레를 받고자 준 것도 아니니
이렇게 액땜을 하였노라 생각하면서 다른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뭐, 동네라고 해봐야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산골에
몇채 안되는 집들이 간간히 눈에 띄는 곳이긴 하지만요.

어차피 귀농을 꿈꾸며 찾아다니는 동네라 이왕이면 제일 높은 지역의 집으로 갔죠.
그곳엔 여기저기 풀어놓고 키우는 닭과 염소가 몇마리 보였습니다.
집주위에 텃밭이 있는 걸로 봐선 일반 식당하곤 거리가 전혀 멀다는 느낌이 들었죠.
단순히 농사나 짓고 사는 일반 농가 그자체였습니다.

귀농지를 알아보려고 지나던 길에 잠시 들렀노라고 말씀드렸더니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안주인께서 마침 사람이 그리웠던 참이라고 하시며
암탉이라도 한마리 잡아줄테니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점심 때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기에 배가 무척 고팠지만,
좀전에 들렀던 동네에서 어처구니없이 바가지를 쓰고 온터라 제맘처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금 아랫 동네에서 먹고 왔노라고 얘길했죠.
그랬더니 좀전과는 전혀 다르게 언성을 높이시는 겁니다.

"이깟 토종닭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그러느냐, 좀 팔아주면 안되냐?"고 하시는데,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지...
암튼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국수라도 삶아 준다고 붙잡으며 말씀하셨지만,
한사코 뿌리치고 나와야 했습니다.

물론, 제가 뿌리치고 나온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제가 옷을 뻔지러하게 잘 차려입었거나 돈이 있는척 거만하게 행동을 했었던 것도 아니거든요.
그저 수수한 차림에 몰고다니는 차도 십년이 훨씬 지난 중고차인데도 불구하고
시골 사람들이 먼저 제게 접근하거나 달라붙어서 바가지를 씌우려 했기 때문이죠.

뭐, 시골 분들이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동네마다 텃세를 하려하거나 순진한 사람이 찾아오면 은근히 우려먹을려고 하는...
그런 분들이 있게 마련이라 저도 왠만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넘기려 애쓴답니다.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완전히 질려 버리는 것입니다.

귀농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도시에서 한밑천 두둑히 모아서
소일거리로 텃밭이나 가꾸고 놀기삼아 전원 생활을 꿈꾸려 하는 줄로 착각을 하는 게 문제죠.

귀농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독심술이라도 배워서 귀농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그러면 정착해서 살아가더라도 큰 불편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을테니까 말이죠.

시골 인심이 왜 그런지...
너무나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두번 다시는 쳐다보고도 싶지않은 곳이라 생각하니
잠시라도 그곳에서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남들은 신혼 여행지로 정하고 찾는 곳이긴 하지만 저는 정말 싫더군요.
이제 두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맹세하며 한참을 달려오는데,
저만치에서 젊은 연인이 손을 흔들며 차를 세우더라고요.

"왜요? 차가 고장났습니까?"
"아뇨, 문무대왕릉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길을 잘 몰라서요.
혹시 아시면 좀 가르쳐 주세요."
"네...조금만 더 가시면 나오는데...
오시는 도중에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줄텐데요."
"우리도 물어보았죠. 이리로 가라고 해서 가면 엉뚱한 곳이 나오고...
그곳에서 다시 물어보면 또 엉뚱한 곳을 가르쳐 주고...
그러다 이렇게 헤매게 된 것이지요.."

"그럼, 제가 먼저 앞장서서 갈테니 저를 따라오세요.
저도 이곳에서 우측으로 빠져서 갑니다만,
모처럼 문무대왕릉까지 가보고 가죠 뭐."
"일부러 우리 때문에 가실 필요는 없으신데...암튼 고맙습니다."

언제쯤 다시 와보게 될런지는 몰라도
정말이지 두번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곳입니다.

귀촌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제마음이,
다음에는 만나는 사람들을 더욱 경계하며 대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니
서글픈 감정이 복받쳐오르는 것을 숨길 수가 없군요.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662  나의 수면법 (2007년 겨울호 대한 문학 세계 수필 산책 코너)      임정수 2007/11/26 1983
661  섹스      임정수 2007/12/13 1997
660  첫눈에 반해버린 그녀      임정수 2007/12/17 1860
659  그녀가 남긴 그말 한마디      임정수 2007/12/18 1960
658  시발넘아      임정수 2007/12/19 2069
657  행복한 하루(2)      임정수 2007/12/20 1909
656  바닷가에서 한해를 정리하면서      임정수 2007/12/21 1950
655  잘가시오! 나의 정해(丁亥)씨!      임정수 2007/12/22 1939
654  석굴암 기도 중에      임정수 2007/12/23 2019
 시골 인심(ㅊ)      임정수 2008/01/05 2196
652  매가패스로 바꾸려는 이유      임정수 2008/01/15 1856
651  자위 행위      임정수 2008/01/30 2039
650  알레르기 비염 (2)      임정수 2008/03/13 1953
649  지리산에서      임정수 2008/03/15 1774
648  봄이 오는 길목에서      임정수 2008/03/19 1921
647  불륜을 꿈꾸며      임정수 2008/03/20 1740
646  이별 연습      임정수 2008/03/21 1733
645  우렁이 한마리 키워볼까? (ㅊ)      임정수 2008/03/22 2014
644  히라시와 임정수      임정수 2008/03/23 2342
643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임정수 2008/03/24 1879

 [1][2][3][4][5] 6 [7][8][9][10]..[3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Ol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