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7/01/30, 조회 : 2223
제목  
 통일! 근무 중 까딱없음. (2007년 03월 산업 자원부 사보 문화마당에 수록됨)

통일! 근무중 까딱없음. / 임정수




내가 사병 생활을 하던 경기도 모 부대에서의 일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 모였으니 지역에 따라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사투리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하고자 한다.
원래 군대란 팔도의 사나이들이 한데 다 모일 수 있는 집합소가 아니던가.
어느날 우리 중대로 신병이 전입을 왔다.
그 신병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발음과 억양이 유난히도 강하며 사투리가 심했다.
나도 만만치가 않지만, 나보다도 더 심했던 것이다.
보통 자대 배치를 받으면 고참들로부터 표준말을 사용하라는 교육을 받게 마련인데,
태어나서 줄곧 사용해 온 사투리가 쉽게 고쳐질리가 없었다.
평소 무엇을 시키거나 얘길 나누다 보면,
" 예, 억수로 만슴미더. "
" 천지다 아임미꺼. "
그나마 나는 알아듣는 말이지만, 내 동기들은 무슨 말인지 모를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내가 중간에 나서서 통역아닌 통역을 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중대의 주 근무지는 위병소였고, 위병소 근무를 나갈 때면
부대를 출입하는 자대 간부 및 타부대 사람들도 많이 드나드므로
고참으로써 후임병에 대한 근무 요령을 숙지시키며 세세히 알려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석식(저녁 식사)후 야간 근무조 점검 때의 일이다.
야간 근무자들이 2열 종대로 줄을 서서 점검을 받는데,
나는 그 신병과 12번째의 마지막 끝에 서게 되었다.
위병소의 야간 근무자들 중 마지막 근무조였으니까.
그날따라 목이 아파 신병과 자리를 바꾸어 서 있었다.
" 아홉, 열, 열하나..."
앞에서부터 힘찬 구령으로 번호를 대었고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보통 2명씩 조가 맞으니까,
" 열둘, 꽉 " 또는 " 열둘, 만땅 "이라고 하는데, 그 신병은
" 열둘, 이빠이 "라고 하는 것이다.
" 하하하..."
야간 근무자들이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 이빠이? 오라이가 아니구? "
일직사관은 신병의 '이빠이'란 말에 신병인 이등병 보다는 오히려 고참인 나를 보면서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않았냐는 듯 보는 것이다.
순간, " 열둘, 만땅이라 카이, 지금 내하고 장난하나? "
나는 신경질 적인 듯한 격한 어조로 신병에게 소릴쳤고 일직 사관은 한심하다는 듯 우릴보며,
" 카이? "
그러곤 웃고 만다.
내가 누구던가?
군대에서 짬밥은 그냥 물에 말아서 후루룩 마시는 게 아니다.
그동안 눈치 하나로 버텨 온 내가 아니던가.
이럴 땐 '나 죽었소'하고 얌전히 있으면 오히려 내가 더 심하게 닥달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신병에게 큰 소리로 꾸짖 듯 소리치자 눈치없는 이등병이 상기된 얼굴로 또 나선다.
" 우리 갱남에서는 다 그란다 아임미꺼 "
또 한번 다들 웃고 난리다.
가만히 일직사관의 눈치를 보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혹시라도 신병이 부대 내에 적응을 잘 못해서 사고(?)라도 치는 날이면...
이래선 안되겠다 싶은지 일직사관은 화를 누그러 뜨리면서 조용히 얘기한다.
" 여긴 군대이고 사회에서처럼 심하게 사투리를 쓰면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듣질 못하니
되도록이면 표준말을 사용하도록 하라 "는 훈시를 끝으로 야간 근무자의 신고식은 그렇게 끝났다.
그날 이후로 우리 내무반의 모든 병사들은 다 함께 합심하여 표준말 사용에 한동안 열을 올렸고,
나 역시 많은 걸 배울 수가 있었다.
신병이 온 지도 두어달이 지났으니 어느정도 적응을 해나가는 것 같고 별로 걱정이 될 게 없었다.
어느날 신병과 또 한조로 근무를 서게 되었다.
" 앞쪽에 누가 옴미더. "
" 어디? "
앞쪽을 보니 멀리서 부대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부대로 오는 길에 진입로를 둘러보는 듯 했다.
그 뒤로 부대의 1호차가 라이터와 비상등을 켜고서 서서히 따라오고 있었다.
평소 1호차에 부대장이 타고 있으면 라이터와 비상등을 켜고,
퇴근후라던지 빈차로 올 경우엔 라이트를 끄고 오기로 1호차 운전병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사실, 1호차가 아니더라도 대낮이라 멀리서 오는 부대장을 쉽게 알아 볼 수가 있었다.
" 이젠 실수 안하고 잘할 수 있지? "
" 예, 잘할 수 있슴미더. "
신병은 자신감으로 가득찬 목소리로 힘있게 말했다.
이윽고 부대장이 우리의 전방 8미터 지점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 앞에~ 총, 받들어~ 총. "
" 통일! 근무중 이상 무. "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분명 '근무중 이상 무'라고 해야 하는데, 못말리는 우리의 신병은 잔뜩 긴장하여
" 통일! 근무 중 까딱업슴. "이라고 외쳤다.
당황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병은 실수하지 않고 잘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입가에 웃음까지 머금고 있었다.
' 이젠 죽었구나 ' 생각하며 최소한 3박 4일간은 정신 교육대에 입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안면이 많은 나를 본 부대장, 신병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다독거리며,
" 수고가 많군. "
그리곤 나를 보더니 피식 웃는다.
"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병 근무 교대를 하고 중대로 들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인사계의 호출이다.
근무 태도 불량으로 정신 교육대 입소대신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 30바퀴를 돌라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병은 열외이기에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고 마냥 웃고 있다.
덕분에 나는 발바닥에 땀띠가 나도록 연병장을 뛰고 또 뛰었다.
그것도 완전 군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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