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6/11/18, 조회 : 2056
제목  
 사람잡는 스팸 메일 (2010년 여름호 대한 문학 세계 수필 산책 코너에 수록)

사람잡는 스팸 메일 / 임정수



인연인지 우연인지 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은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같았다.
내가 사랑하던 여인의 이름은 '정아'이다.
그래서 나는 '정아'란 이름을 잊지못한다.

인터넷 문학 사이트에서 글을 쓰며 댓글로 만나 알고 지내게 되었다.
그 분은 나의 글을 무척이나 사랑 해주셨다.
아니, 꼭 내 글을 사랑 해주셨다기 보다는 이름에 얽힌 인연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에겐 아주 특별한 분이시다.

내가 글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셨다.
어느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첨 듣는 목소리라 누군지 몰랐었지만, 목소리가 무척이나 청아하고 맑았다.
인터넷 문학 사이트에서 함께 글을 올리며 얼마 전엔 시집 [마술에 걸린 여자]을 발간하신 김정아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더 이끌리는 감정이 있었는지 한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얘길하다보니 가슴이 후련 해져옴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 해봐도 이해심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그 분을 더 존경하고 좋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명색이 절에를 다닌다는 사람으로서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란 불가에서의 말이 있듯, 이렇게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 시기엔 내가 올린 글로인해 무척이나 고통을 받고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이므로 어디든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다.
그때, 구세주라도 되는 듯 홀연히 나타나셔서 나를 바르게 이끌어 주신 분이 김정아 선생님이시기에 나는 지금도 존경한다.
어쩜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자주 전화상으로 많은 얘길 주고 받았으며 가끔은 메일로도 다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나누곤 했었다.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선생님이 여자로 느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왜냐면, 아직까지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지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인터넷으로, 댓글로, 쪽지로, 전화상으로, 그리고 메일이나 문자로 몇 번 만난 정도이지만, 실제로 만나뵈올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나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보통 인연이 아니라면 한번 쯤은 만나서 식사 대접도 하고 얼굴을 보면서 얘길 나누어야 하질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껏 단 한번도 만나 본 적은 없다.
언제나 마음은 꼭 한번 시간을 내어 만나뵈러 가야지...그러면서도 좀처럼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가끔 생각날 때면 전화을 걸어 목소리를 듣곤 하지만, 그것은 내 입장에서 나혼자만의 생각이고, 나의 선생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런지 모르겠다.

그때까지만해도 컴퓨터에 대해선 전혀 모르던 내가, 일단 구입을 해놓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란 생각으로 컴퓨터를 구입했었고, 순전히 독문으로 게임부터 하다보니 글을 쓰는 법이나 메일을 주고 받는 걸 겨우 깨우칠 때라 몹시도 서툴렀었다.
한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컴퓨터에 대해서 그리고 글을 올리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물어보고 배우리라 다짐했었는데, 벌써 몇 번이나 해가 바뀌어도 나는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사업상 가게도 몇번이나 옮기고 그에따라 집도 옮기면서 바쁘게 뛰어 다니다 보니 더욱 시간에 쫓겼던 것 같다.
서로의 마음이 변치 않는 한 웃으며 만날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나의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않다.

요즘은 여기저기 다니는 사이트도 없고, 시심이 떠오르질 않아 조용히 공부하며 수행 중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멋진 작품으로 선생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가끔 선생님이 생각날 땐 내가 전화를 드리거나 선생님 또한 나를 잊지않고 계실 땐 전화를 해주셔서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서로가 바쁘게 살다보니 점점 연락을 할 시간적 여유도 줄어드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모든 것이 내가 하기에 달렸는데 나는 아직도 게으런 탓인지 그런 센스도 잘 모른다.
이쁜 목소릴 한번이라도 더 들으려면 내가 먼저 두번, 세번 계속해서 전화를 해야하지만 쓸데없는 핑계처럼 마음이 따르질 못한다.
정성이 부족해서 일까? 선생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일까?

언젠가 메일을 주고 받을 때가 생각난다.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메일을 계속 받을 수도 있었는데, 우연한 사고아닌 사고로 중단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스팸 메일 때문이다.

비록 가끔씩 듣는 선생님의 목소리였지만 내겐 생활의 활력소요, 마음의 안식처였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운이 충전되었던 것이다.
어느날, 선생님의 메일을 기대하며 로그인을 하여 메일을 점검했다.

제목 : '저에요, 부탁하신 거 보냈어요.'
발신자 : 정아

부탁? 내가 부탁했었던 게 있었던 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그런 적은 없었다.
어쩜 텔레파시가 통해서 내가 선생님의 메일을 기다린다는 걸 아시고 이렇게라도 제목을 달아서 메일을 보내주셨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어쨌던 발신자가 정아란 메일을 보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으로 마음은 하늘을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일이었던가.

나는 너무나 좋아서 보고 또 보곤했다.
그러다 얼른 보고싶은 마음에 제목을 클릭했다.
보통 때와는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내가 컴에 대해서 잘 모르니 이런 화면이 나타나는 걸로 메일을 쓰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확인을 하는거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망설이는데 [만19세 이상]과 [수신거부]라고 보였다.
얼마나 기다리던 메일이었는데 수신거부를 하겠는가.

아무 생각없이 [만19세 이상]을 클릭했다.
아무리 컴맹이라 모른다지만 메일치고는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걸 느끼면서 말이다.
아무튼 감개무량하여 기쁜 마음으로 클릭을 하는 순간,
"으악~"
나는 놀라서 뒤로 까무러칠 뻔 했다.
화면의 작은 배너 창 같은 게 번쩍번쩍 하면서 이쁘고 날씬한 여자가 홀딱 벗은 채로 날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좋으면 좋다고 전화를 걸어서 말로 해도 될 것을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다.
나의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시진 않을 건데...
나는 연신 이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치 뒤통수에 무언가 딱딱한 것으로 세게 맞은 듯 멍하니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말이다.

그런데 함께 벗고있는 저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정말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이건 분명 무언가 잘못 된 것일 거라 생각하면서 얼른 집근처에 사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라고 했다.
후배는 마침 시간이 있어서 무슨 일인가 싶어 급하게 뛰어왔다.
나는 자초지종을 후배에게 얘길했고 후배는 배꼽이 빠질세라 큰소리로 웃었다.

그 이유는 나의 선생님이 보내신 메일이 아니었고, 이상한 포르노 사이트에서 들려달라고 유혹하는 메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나의 선생님께선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셨다.
이젠 창을 닫아야겠다싶어 '창닫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창닫기 버튼을 클릴하는 순간 수많은 창들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것이었다.
하나씩 닫으면 다 지울 수 있겠다 싶어 닫으면 다른 게 또 열리고, 닫으면 또 열리고...
후배가 해보겠다며 자판기의 Alt+F4 버튼을 눌러도 창은 계속해서 열리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컴퓨터를 끄려고 CTRL+ALT+DELETE 버튼을 눌러 해결을 하였지만, 그날의 메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호기심에서이지만 정아의 유혹하는 사이트를 몇 번 클릭하여 찾아 가 본 적이 있다.
어디까지나 문 밖에서 구경만 하고 왔지만...
그날 이후로 어떤 메일이던지 두번, 세번 확인을 하고 나서야 들어가게 되었고, 포르노같은 이상한 메일은 지금도 스팸 메일로 분류하여 들어오는 즉시 스팸메일로 보내버린다.

김정아 선생님!
다른 정아 여인이 유혹해서 잠시나마 정아 선생님으로 착각 했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젠 두번다시는 그 어떠한 정아가 찾아와서 유혹을 해도 정신을 바짝 차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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