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6/11/12, 조회 : 2303
제목  
 나의 중학교 시절

나의 중학교 시절 / 임정수




내가 중학교를 졸업 한지도 벌써 23년이 되었다.
구포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는 중학교 1학년 땐 지금의 덕천 초등학교에서 다녔었다.
그러다 2학년이 되면서 구포 2동에 위치한 구포 중학교에 다녔었는데,
그때 당시엔 모라와 구포의 경계 지역쯤 되어서 지금은 어느 동에 속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공사를 하는 인부들도 많이 있었지만,
수업보다는 돌맹이 하나 하나를 주워 나를 때가 더 많았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께선 우리 동네에서 하숙을 하고 계셨다.
조금만 더 철이 들었었더라면 담임 선생님께 자주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을텐데..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쉽기만하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학교를 옮긴터라 학교뿐만 아니라 학생들 모두 어수선 한 가운데
새로운 학교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으로 몹시도 들떠있었다.

나의 담임 선생님은 부산대를 수석 졸업하고 갓부임해 온 여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런 담임 선생님을 짝사랑했었다.
날이 갈 수록 담임 선생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집착이 심했고
거의 병적이다시피 했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통씩의 편지를 썼고 틈만 나면 나의 똘마니(그때 나는 학교에서
어느정도의 주먹이었으므로)에게 심부름을 시켜 편지를 보냈다.
나의 선생님은 단 한번이라도 내가 직접 편지를 전해주길 바랬었지만,
나는 한번도 직접 전해본 적은 없었다.
졸업을 할 때 까지도...
나의 첫사랑은 이미 따로 있었으므로,
사춘기 때의 방황이라기 보다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라서 더욱 고뇌하는
시기였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십여년에 가까운 나이차도 있었지만,
담임 선생님만 나하고 마음이 통했더라면 지금쯤 나의 인생은 전혀 딴판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담임 선생님이 현명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느 학교에서 근무를 하시는지 이미 알아본터라 알고는 있지만,
차마 나서서 찾아뵐 용기가 없다.
그동안 변변치도 않은 걸 사업이랍시고 이것 저것 떠벌려놓기만하고 제대로 성공한 적은 없다.
그래서 다 떨어 먹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은사님을 찾아뵐려고 하니 자신감도 없고 나자신이 너무나 초라함을 느낀다.
한동안 고심한 끝에 당분간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조금씩 준비하는 글들이 다 정리가 되어 내이름으로 책이라도 출판이 된다면
그 때에 찾아뵙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아직은 준비 단계에 있지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해도 교복을 입었었다.
중 2가 될 무렵에 사복으로 바뀌었지만...
동절기 때 까만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닐 때가 생각난다.
까만 운동화를 접어 신으며, 상의 윗 단추는 끌러고 까만 가방을 옆구리에 낀채
모자는 비뚤하게 돌려 썼었지.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이동네 저동네 아이들이 모여 패싸움을 하기도 했었는데...
구포동과 화명동, 덕천동, 만덕동...각 동마다 돌아가며 어느 동이 제일인지 힘겨루기를 했었다.
물론 구포동이 제일 싸움을 잘 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약방의 감초처럼 내가 이런 저런 싸움에 끼어들긴 잘했어도 단 한번도 학교에서
내 이름이 오르내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낀 싸움은 반드시 이겼었다.
내가 싸움을 잘 해서가 아니다.
내겐 구포에서도 유명한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구포 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유명하다고 해야 하겠지만,
그런 친구가 있었기에 언제나 이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런 친구를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학교에서나 구포에서 제일인양 떠들어대고 다녔지만,
그 친구는 언제나 웃음으로써 나를 이해하고 지켜주었던 것이다.
언젠가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얼마되지 않아 그 친구를 길거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내 곁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냥 걸어서 지나친 상황이었다면 불러서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을텐데,
오토바이를 타고서 짦은 시간에 순간 적으로 지나가는 걸 보았었고,
그 친구와도 시선이 마주쳤지만 지나치고 나서야 그 친구란 게 생각났던 것이다.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그 친구는 쫓기는 몸이었었고,
수하의 애들이 잘못하여 아직까지도 들어 가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다.

정말이지 그때만해도 비포장 도로라서 학교를 다녀올 때엔 언제난 흙먼지를 잔뜩
덮어쓰며 돌아오곤 했었다.
그무렵 나의 첫사랑이었던 장미는 우리 학교 바로 밑에 있는 모라 여중을 다녔었고,
우린 저녁 때나 되어서야 만나곤 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우린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커플이었고 동네 사람이라면 장미와
나의 사이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었다.
나는 장미를 만나면서도 선주를 좋아했었다.
그것은 장미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학교가 끝나자 마자 들러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내 친구의 집이었는데, 친구 보다는 솔직히 친구의 누나를 좋아해서 찾아갔었다.
우린 구남동에 있는 분식집에서 만났었다.
그때 그녀는 구포 여자 상업 고등학교에 다녔었다.
알 수 없는 아픔으로 2년간 휴학을 하다 들어왔다는데 그때 그녀는 2학년이었다. 우린 그 후로도 몇차례 더 만났었고,
어느날 비가 와서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게 되었다.
그녀의 집 앞까지 왔을 때 내친구인 수용이가 그녀를 위해 우산을 가지고 대문 밖으로
나오면서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수용이가 그녀의 동생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용인 내가 자신의 누나와 만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외면 해버렸고,
가끔 내가 집으로 찾아가면 밖으로 피해주었다.

내가 3학년에 올라가면서 갑작스레 그녀와의 소식이 끊어지고
나도 또 다른 문제에 직면 해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돈만을 밝히는 담임 선생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서 알아서들 챙겨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허구헌 날 교무실로 불려가서 무릅을 꿇고 손들고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벌을 받는 건지도 모르고 선생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벌을 서야만 했었다.
어느날 교무실에 꿇어 앉아 손을 들고 있으려니 학부모인듯한 사람이 담임을 찾아 왔다.
자세히 보니 반 친구의 어머니였다.
담임은 큰 소리를 마구 질러댔고 반 친구의 어머니는 말없이 두툼한 흰 봉투를 내밀었다.
담임은 조용히 동투를 들고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맘에 드는지 입가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주위에 앉아 있던 다른 선생들은 못본 척 얼른 고개를 돌렸다.
담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른 양복 안쪽 주머니에 깊숙히 찔러 넣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공부에 대한 회의와 모든 선생님이란 호칭에 대해서 심한 경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내가 어차피 공부를 안할 바에는 차라리 어느쪽으로 나갈 것인지 분명히 결정을 해야 할 때라고 말이다.
나는 주먹을 택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주먹이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무언가 적성에 맞는 게 있으면 그길로 나가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참고 또 참으며 학교를 다녔다.

23년이 지난 지금, 다들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나의 첫사랑인 장미는 마산에서 큰 마트를 운영하며 잘 살고 있다.
언젠가 그녀의 여동생을 만난 적이 있어서 소식을 전해 들을 수가 있었다.
지금이라도 소식을 알려면 가능하겠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만난들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그만 두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던 친구의 누나는 학교의 선생으로 근무하고 있다.
언젠가 메일을 한번 보냈지만, 아직 연락은 없다.
그렇게 잊어야 한다.
지난 사랑이 아름답고 진정으로 소중하다면 추억으로만 간직하여야 한다.
더 이상의 미련은 서로에게도 좋지않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이기에 잊어야 한다.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모 고등학교의 수학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시다.
언젠가 나의 글이 완성 된다면 꼭 찾아뵈올 것이다.
심심하면 나를 불러서 벌을 주었던 별명이 두꺼비였던 선생...
길거리에서 부딪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인정이 메말라 가는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 남기란 여간 힘드는 게 아니다.
나도 꿋꿋히 살아 버틸려면 한없이 매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살벌한 경쟁 사회 속에서 본의 아니게 밑줄친 인생이지만,
나도 나만의 삶이 있다.
나만의 인생이 있다.
나를 변하게 만든 중학교는 아직도 그대로 있을까?
지금은 많이 변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 시절 그 때에 내가 심은 나무는 잘 커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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