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6/11/10, 조회 : 2221
제목  
 자장면 시키신 분 (2008년 여름호 대한 문학 세계 수필 산책 수록)

자장면 시키신 분 / 임정수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밤.
천둥, 번개와 함께 강하게 유리창을 때리며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멀리서 프라스틱과 양동이 같은 게 바람에 날려 뒹구는 듯한 소리가 간간히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마당에 쏟아지는 빗소리는 크게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고,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또한 들여보내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빗줄기는 굵어졌고 마당에 나서서 밖을 내다 볼 엄두도 못낸 채 현관 안에서 서성였다.
저녁도 못 먹었는데... 장마철이라 그런지 퍼붓는 장대비에 차마 불을 켤 엄두도 못내고 숨을 죽인채 방에 들어와 앉았다.
뱃 속에선 허한 창자를 채워달라고 아우성이며 위장또한 심하게 꼬집고 비틀며 난리 부루스를 추고 있다.
밥을 먹어야겠는데 혼자서 저녁상을 차리려니 왠지모르게 서글픈 마음이 엄습 해온다.
처량히 비내리는 날 밤에 혼자서 밥을 해먹는 것도 고역이다.

인생을 함께 걸어갈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얼굴 가득 환한 웃음으로 사랑을 듬뿍 담은 맛있는 행복으로 요리를 할 수가 있을텐데...
아직은 인연이 아니라 늦게 만날 뿐이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어루만지면서, 비록 혼자이지만 당분간 혼자일뿐 영원히 혼자가 아닐거라 생각하며 언젠가 만나게 될 그 사람을 위해 열심히 요리를 배우고 익혔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머지않은 인연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은 소식이 없고 당장에 무엇인가를 채워달라며 아우성인 뱃 속의 창자부터 달래줘야겠다.
무엇을 먹을까?
켄터키를 시켜 먹을까? 아님, 족발?
족발은 싫다. 비도 내리는 데 괜히 끈적거리는 것은 왠지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자장면을 시켜먹기로 결정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이 시간에 자장면이 배달 될지는 의문이지만, 되면 되고, 안되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단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다행히 된다고 한다.
뱃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 소리인지 짧은 환호의 소리가 들려온다.
'앗사, 오케바리'
비를 맞고 배달을 온 사람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을 해봤다.
아마도 비옷을 입었을테고, 빗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현관을 들어설테지..
랩을 씌운 자장면과 식초, 단무지를 끄낼 것이고..
젠장, 뱃 속에서 또 아우성이다.

어느새 눈 앞엔 후각을 자극하는 자장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두어 젓가락 둘둘 말아서 꿀꺽 삼켜 버리면 금새 바닥을 드러낼 보통을 시켰다.
그래야 또 시킬 것이니 말이다.
한번에 꼽배기를 시켜 버리면 자장면을 한번만 구경하게 되겠지만, 보통을 시켜서 얼른 먹고 또 시키면 정말 맛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두어번 집어서 후루룩 마시듯 입 속으로 자장면을 들여보내니 자장면은 금방 없어졌다.
또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오겠다고 한다.
당연히 와야지. 어차피 빈그릇도 찾아가야 될테니 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ㅋㅋㅋ

자장면이 올 동안에 커피 포터에 물을 붓고 스위치를 눌렀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진한 커피 향에 취해 추억을 더듬고 옛 사랑을 더듬었다.
첫사랑이었던 장미와 좋아했던 선주...수 많은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제는 아름다웠던 추억의 한페이지로 남았지만, 옛 사랑은 언제 생각해봐도 달콤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갑자기 속이 출출해져옴을 느꼈다.
커피 포터에 물을 끓여 사발면에 부었다.
이 넘의 자장면은 시킨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오는지...소식이 없다.
사발면을 다 먹을 때까지도 소식이 없다.
안오는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포기를 하고 입가심으로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현관을 밝히던 불을 껐다.

밖에는 아직도 세찬 바람에 무엇인가가 날아다니는지 여기 저기에 부딪히며 굴러다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배가 불러서인지 눈끄풀이 감기면서 잠이 온다.
생생하던 의식은 어느덧 흐릿해져 가고 자꾸만 한없는 꿈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자꾸만 자면 안된다는 강한 의식이 나를 붙들지만 나는 스스로도 통제를 할 수가 없어 이끄는대로 끌려간다.

얼마나 이끌려 갔을까?
자꾸만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무슨 소릴까?
가만히 귀 기우려 정신을 집중시켰다.
천둥 번개와 함께 세찬 비바람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닌데..이게 아닌데..
다시 한번 더 정신을 집중했다.
'똑똑똑...'
무엇인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득한 잠결이었지만 분명 비바람이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고 사람이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누굴까?
이렇게 깊은 밤에...
또렷한 정신은 얼른 일어나야 된다고 재촉하지만, 육신은 전혀 말을 듣질 않는다.
'똑똑똑..'
이상하다, 분명 사람이 두드리는 소린데...

"자장면 시키신 분! 에이..ㅅ ㅂ.."

"아뿔사..."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742  친절 직원을 추천하며...(진해 용원 의창수협)  [11]    임정수 2011/02/05 1458
741  나의 숙      임정수 2010/10/27 1648
740  원조 교제를 하던 여인      임정수 2010/07/30 1352
739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임정수 2005/01/24 1826
738  나를 찾아서      임정수 2005/01/26 1920
737  영미야!(추억을 정리하면서...)      임정수 2005/01/27 1879
736  < 낙원을 꿈꾸며 > - 3. 황홀한 사랑      임정수 2006/11/02 2479
735  겨울 나그네      임정수 2005/01/29 2048
734  올바른 믿음      임정수 2006/03/19 1582
733  < 낙원을 꿈꾸며 > - 4. 요리 모임      임정수 2006/11/05 2167
732  21세기의 선녀와 나뭇꾼(대한 문학 세계 2009년 겨울호 꽁트에 수록)      임정수 2007/06/16 2617
731  냄새를 먹다.      임정수 2007/06/03 2251
730  흰 고무신의 추억      임정수 2007/06/12 2673
729  내 몸엔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소.      임정수 2007/06/13 2463
728  낚시 대회에서 생긴 일(2008년 가을호 대한 문학 세계 수필 산책 코너)      임정수 2007/06/14 2600
727  진~짜 거짓말      임정수 2007/06/15 2368
 자장면 시키신 분 (2008년 여름호 대한 문학 세계 수필 산책 수록)      임정수 2006/11/10 2221
725  좌광우도(2009년 대한 문학 세계 여름호 수필 산책 코너에 수록)      임정수 2006/11/13 2459
724  나의 중학교 시절      임정수 2006/11/12 2305
723  < 낙원을 꿈꾸며 > - 5. 영애      임정수 2006/11/08 2385

 [1] 2 [3][4][5][6][7][8][9][10]..[3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Ol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