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6/11/05, 조회 : 2167
제목  
 < 낙원을 꿈꾸며 > - 4. 요리 모임

선영은 자신을 지목하며 노골적으로 말하는 정재가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도 때도없이 고개를 쳐든다는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아내가 점심을 다 먹자 그릇을 정리하며,
" 이제부턴 당신이 통제를 좀 해줘, 당신이 통제를 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아. "
아내는 말없이 웃었다.
혜미도 따라 웃으며 은근히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박사장 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가 받았다. 진공팩에 들어있는 <장삼탕>이 더 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내가 한 손으로 수화기를 막으며 조용히 더 있냐고 물어본다. 열개쯤 있을거라고 했더니 모두 다 사겠다고 한다.
" 장삼탕이 비아그라라도 되는 모양이지? "
" 하하하..."
아내가 먹은 그릇들을 담으며,
" 선영인 큰 언니하고 있을래? 난 혜미하고 얼른 갔다올께. "
정재는 혜미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 혼자 갖다와도 되잖아. "
" 내 맘을 그렇게도 모르겠어? 아침부터 참느라 혼났다구. "
" 하하하...그거 때문에 같이 가자고 그랬구나. "
" 앞으로 재료에 관해서 돈거래는 당신이 하도록 해. 알았지? "
" 알았어, 그때 그때 내가 알아서 챙길께. "

정재가 혜미와 함께 가게로 다시 돌아오니 선영은 아내와 함께 치킨을 먹고 있었다.
" 간 지가 언젠데 이제서야 오는거야? "
혜미가 치킨을 하나 집어들며,
" 응, 둘이서 할 얘기가 있어서 얘길하다 보니 늦었어. "
" 얘길하다보니 늦은 게 아니라 침대 위에서 배를 맞추다 보니 늦은거겠지. "
" 하하하..."
아내의 뼈있는 말에 다들 웃었다.
" 미안해 언니, 나 혼자만 배 맞추고 와서"
" 하하하.."
" 그래, 몇개야? 열개 돼? 선영이도 더 필요하다는데. "
" 응, 혹시나해서 여유있게 가지고 왔어. "
" 나는 좋지만...이젠 정말 언니가 통제를 해야겠더라. 이사람 장난 아냐. "
" 나보다도 니가 참을 수 있겠어? 난 니가 더 걱정된다. "
" 하하하.."
옷가게 미경이 한테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혜미가 받아서 있다고 하는걸로 봐서 미경이도 <장삼탕>을 찾는게 분명했다.
아내에게서 치킨이 담긴 봉투를 건네받아 밖으로 나왔다. 전화벨이 울려 폴더를 열고 받았다.
" 예? 예, 알겠습니다. 지금 작업중인데 도착하려면 20분쯤 걸릴 것 같습니다. 예,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
가게엔 그때까지 선영이 앉아서 얘길 하고있었다.
" 지금 선영이 아파트에 작업 나갈건데 가는 길에 태워줄테니 갈래? 아님, 더 있을거야? "
" 나도 이젠 가야지. 너무 오래 앉아있어요. 어차피 가는 길이라니까 타고 가면 좋지 뭐 "
" 마침 잘됐다. 선영이 사는 아파트라서. "
" 오빠 작업할 동안에 혜미 언니도 가자. 나하고 차마시고 얘기하다가 오빠 일 끝나면 같이 오면되잖아. "
" 나도 그러면 좋겠지만, 오늘은 가게에 별로 붙어있지도 못해서.."
혜미가 미안한 마음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자,
" 그래, 같이 가서 선영이랑 좀 더 얘기도 하고 일 끝나면 이이랑 같이 오면 되잖아. "
" 언니 혼자만 가게를 지키게 해서 미안해. "
" 미안한 줄은 아는구나. 그렇게 미안하면 담엔 니가 가게를 봐라, 나도 가끔은 낮에도 배 좀 맞추며 살고싶다. "
" 하하하..."
선영이 사는 아파트로 갔다. 혜미와 선영이 내리며,
" 끝나는대로 언니 데리러 오세요. "
" 응, 알았어. "
정재는 장비를 끄내어 챙겼다.
" 오랫만일세. "
" 아, 안녕하세요. "
경비원 김씨 아저씨가 어느틈에 뒤에 서 있었다.
" 1302호에 배수관이 막혔다고 해서요. "
" 아, 그래? 하난 이리주게. 내가 엘레베이트까지 들고 갈테니. "
" 예, 고맙습니다. "
" 요즘은 이쪽으로 작업이 없으니 얼굴 보기도 힘드는구먼. "
"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
" 이따가 끝나는대로 들리게, 커피라도 한잔 하게..."
" 예, 끝나고 들러겠습니다. "
1302호로 갔다. 벨을 누르니 젊은 여자가 나온다.
" 안녕하세요. "
" 어서오세요. "
현관을 들어서며 얼핏보니 집안이 엉망이다. 욕실 문을 열어보니 배수관이 꽉 막힌데다 아이들이 물을 틀어놓고 놀아서인지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물이 고여있었다.
" 주방 씽크대나 베란다 쪽엔 괜찮습니까? "
" 네, 그쪽엔 괜찮아요. "
장비를 끄내며 물었다.
" 아이들이 몇살이죠? "
" 네, 여섯살짜리하고 일곱살짜리 아들만 둘이에요. "
" 년년생이군요. 한참 활기차게 뛰어놀때네요. "
" 아이들은 공부하나요? "
" 아뇨,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요. 일하시는데 방해가 될까봐 놀다가 오라고했어요. "
" 네, 잘하셨습니다. 한참 놀땐 놀아야죠. "
돌돌 감긴 쇠줄을 풀어 배수구 구멍에다 밀어넣었다. 그리곤 손잡이를 돌리자 딸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쇠줄이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쇠줄이 들어가자 꽉 막혀있는 것인지 딸그락 소리만 날뿐 더이상 들어가질 않는다.
다른 배수구로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한쪽이 뚫리자 다른 쪽 배수구도 뚫렸다. 어느정도 쇠줄이 들어가면 그때부턴 배수 파이프가 직각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더 이상은 뚫을 것도 없는 것이다.
욕조의 안쪽에서도 쇠줄을 넣고 뚫었다. 아이들이 목욕을 하면서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과 양말같은 것으로 꽉 막아놓았기 때문에 쉽게 뚤리질 않아 무척 애를 먹었다. 욕조의 막힌 곳이 뚫리자 좌변기의 물을 내려 보았다. 물이 빠지긴 해도 몇일 못가서 막힐 것 같았다.
" 그긴 괜찮던데요? "
" 네, 괜찮네요. "
아마도 별도로 비용이 들어갈거라 생각한 때문인지 여자가 괜찮다는 말을 해서 무안할까봐 그냥 놔두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들이 별란 집일 경우 몇일 못가서 또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다음에 변기가 박혀서 수리를 하게되면 잘 해주리라 생각하면서 그집을 나왔다.
" 다 끝났어요? "
" 응, 연장은 차에다 실어놓고 왔어. "
욕실로 가서 손을 씻고 나오니 선영이 냉커피를 타 온다.
" 얼마나 힘들었으면 땀을 이렇게 많이 흘려요? "
" 응, 여섯살, 일곱살짜리 아들만 둘 있는 집인데 배수관이 꽉 막혀서 작업을 하고 보니 프라스틱 장난감에다 양말 같은게 잔뜩 들어가 있는거야. 그래도 그집 여자가 수월해서 좋았어. "
" 참,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데 오빠가 이거 좀 끓여주고 가면 안돼? "
" 그러지 말고 내가 옆에서 봐줄테니 선영이가 직접 해봐. "
선영이 작은 냄비를 두개 끄내어 온다. 정재가 옆에서 가르쳐 주는대로 선영이 냄비에다 재료를 넣었다.
" 어느 누구라도 쉽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진공팩에 재료랑 요리법도 적어 놨잖아. 선영이가 지금 해봤으니 다음번에 더 잘 할 수 있을거야. "
" 여보! 선영이가 당신한테 할 말이 있다고 그러는데. "
" 응, 무슨 얘긴데? 괜찮으니까 말해봐. "
" 저, 실은...남편이 조루는 아니지만 시원찮아서..."
" 하하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 좋은 방법이 있어? "
" 내가 의사도 아닌데 그런 걸 알 수가 없지. 내 생각엔 부부가 함께 노력하면 잘 될거라고 믿어. "
" 같이 병원에도 가봤는데 잘 안돼. "
" 남편이 업무에 시달려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일시적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때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거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부부가 서로 의논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야 고칠 수 있어. '
" 그러니까 빠르고 쉬운 걸로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좀 도와줘. "
" 니가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내가 어떻게 해보겠지만, 신랑은 스스로 고쳐야지 내가 나선다고 고칠 수 있는게 아니야. "
" 나는 괜찮아, 신랑이 문제라서 그렇지.."
" 그래도 부부는 일심동체라는데 신랑의 아픔은 곧 너의 아픔이잖아. "
" 치..신랑은 아니라면서..."
" 내가 니 신랑한테 직접적으로 치료를 해줄 순 없어도 너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순 있잖아. "
" 피...그런게 어딨어? "
" 싫음 말던지, 난 답답한게 없으니까. "
" 여보, 그러지말고 선영이 좀 도와줘. 그래도 우릴 믿고 어려운 고민을 털어놨잖아. "
" 신랑하고 둘이서 노력해서 고칠 수 있도록 해야지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잖아. "
" 솔직히 오빠 말이 백번 맞아. 하지만 오빠라면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어떻게 좀 도와줘, 오빠..."
" 그럼, 내가 하라는대로 해볼래? "
" 응, 뭐든 말만해. "
" 신랑에게 보양식을 먹이는거야. 보양식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추천하는 보양식은 붕어랑 잉어, 장어인데 특히, 붕어는 정자를 생성하는데에는 최고의 보양식이라서, 중국의 옛 문헌에도 보면 92살의 노인이 20살의 처녀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어. 장어는 잘 알다시피 정력엔 끝내주는 것이지. 이렇게해서 서서히 체질을 개선시켜보는 거야. "
" 그렇지만 내가 요리를 할 줄 모르는데 어떡해? "
" 그건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돼. 붕어나 잉어, 장어는 집에서 고아먹는 것보다는 엑기스로 해서 먹으면 훨씬 수월하고 간단해서 효과도 빨리 볼 수가 있을거야. 이건...인터넷으로 검색해도 나오지만, 자연산 엑기스라고 있어. 그곳에서 엑기스를 주문해서 먹으면 효과가 빨라. 그것도 꾸준히 먹어야 되지만...그리고, 요리같은건 내가 가르쳐 줄테니까 선영이 배워서 해도되고 아님, 시간이 날때마다 내가 만들어 줘도 되잖아. 그렇게해서 체질을 개선시키면서 신랑도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돼. 그건 내가 차차 알려줄께. "
" 그렇게해도 안되면 어떡해? "
" 그렇게 했는데도 안되면 어쩌겠어? 나라도 널 달래줄 수밖에..."
" 하하하..."
혜미가 웃는다.
"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야. 부부가 마음을 터놓고 함께 노력해도 안되는데 내가 어쩌겠어? 이론적으로라도 설명을 해줄 수밖에...당신은 아직 답답하지 않아서 그래. 물에 빠져 떠내려 가는 사람은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인데 당신은 그걸 모르잖아. "
"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이론 교육을 받으려면 어떡해야해? "
" 매일 두시간씩 나한테 와서 이론 교육을 받아야지. "
" 체...차라리 선영이한테 한번 하자고 바로 대놓고 얘길하지? "
매일 이론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말에, 혜미가 의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 이런 것도 서로가 믿는 마음으로 시작해야지, 지금으로선 믿는 수 밖에는 별 도리가 없잖아. 당신이 반대한다면 나도 할 수가 없으니까...하지만, 선영일 위해서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싶어. "
혜미가 아무말도 못하고 머뭇거리자 선영이 혜미의 손을 잡으며,
" 그래, 언니! 그렇게라도 하고싶어. 언닌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드는지 전혀 모를거야. 그렇게 안심이 안되면 언니도 옆에서 지켜보면 되잖아. 우리 세사람만의 비밀로 하고 언니도 좀 도와줘. 이렇게 부탁할께. 언니... "
" 난 이사람을 믿으니까 괜찮아. 이이가 의사도 아니고 괜히 어설프게 믿었다가 니가 더 큰 상처를 받을까봐 그러는거지. "
" 그래도 크게 손해볼건 없잖아. 만약에 오빠랑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모처럼 제대로 된 기분을 느껴보는 거니까 비밀만 지켜진다면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해. 언니도 옆에서 오빠를 감시하고... 물론, 나도 오빠를 믿으니까 그런 일은 없을테지만 말야. "
" 그래, 알았어. 이가 정 그렇다면 허락하고 말고도 없지. . "
" 고마워 언니! 이 은혜 평생 잊지않을께. "
" 은혜랄게 뭐있어? 니가 원하는대로 소원이나 풀었음 좋겠다. "
" 내가 다른건 몰라도 당신이나 선영이가 후회를 하거나 실망하지 않도록 할 자신은 있어.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고나면 선영이도 지금보다는 더 좋았으면 좋았지 나빠지진 않을거야. "
" 알았어요. 언제부터 시작할거야? "
" 나는 내일이라도 괜찮지만, 선영인 어때? "
" 내일? 좋아. "
" 그럼, 내일 아침에 울 집으로 와. "
" 알았어. "

경비실로 내려오니 김씨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 무슨 일이 이제서야 끝난거야? "
" 아뇨, 일은 벌써 끝났어요. 이 사람하고 같이 오느라고요.."
경비원 김씨 아저씨가 커피를 타준다는 걸 정재가 늦었다며 사양했다.
"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먹기로 하죠. "
" 그래도 모처럼 왔는데 그냥 보내다니 섭섭한걸. "
정재와 혜미는 가게로 갔다. 마침 아내가 배달을 가려고 나온다. 정재가 얼른 차에서 내려 아내에게서 받아든다.
" 내가 갈께. "
" 왜 이제 왔어? "
" 응, 이사람이 얘길 할거야. "
헤미는 정재가 배달을 가자 가게로 들어서며 선영에 대해 얘길 들려줬다.
" 그랬었구나, 어쩐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 "
" 언니도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구? "
"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저이도 그런 얘길 했었어. "
정재가 가게로 들어서자 아내는 정재를 가리키며 혜미에게 얘기했다.
" 갔다왔어. "
" 수고했어요. "
" 일찍 오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넘 늦어버렸어. 정말 미안해. "
" 아뇨, 혜미에게 얘길 들었어요. "
" 오면서 집에들러 추어탕 가지고 왔으니 얼른 데워 먹자. "
혜미가 한쪽 식탁을 닦고 저녁상을 차렸다.
"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어. 하루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
" 그래도 나만 하려구? "
정재와 혜미는 미안한 마음에 눈치만 보며 더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 이젠 다 됐다. 어서들 먹자구. 당신 오늘 많이 힘들었지? "
" 당신도 힘들었잖아. "
" 내가 언닐 많이 도와서 조금이라도 언니가 편하도록 해야하는데...늘 도움도 못되고 짐만 되는 것 같아 미안해, 언니..."
" 괜찮아, 살다보면 그럴때가 있는거야. "

선영이가 왔다.
" 어서와. "
" 큰 언닌? "
" 가게에 있어, 나도 좀 전에 들어왔어. 뭐 마실래? "
" 호박이 좋던데..있어? "
" 응, 잠시만..."
정재가 쟁반에 유리잔 두개와 호박 엑기스를 담아 가지고 온다. 호박 엑기스를 유리잔에 담으며,
" 어젯밤엔 어땠어? "
" 똑같지 뭐.."
" 항상 일정한 거야? 아님, 좋았다 별로였다 기폭이 심한거야? "
" 거의 일정해. 변화는 거의 없는 것 같아. 어쩌다 장어라도 구워주면 조금 다른 것도 같고..."
" 그럼, 신랑이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닌 것 같다. 바람을 피운거라면 밖에서 다 빼고 왔으니 더 이상 뺄게 없잖아. 그래서 기폭이 생길 수도 있는데, 변화가 없는 걸로 봐선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
" 그럼, 조루증 같은거야? "
" 그것도 아닐거야. 내 생각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스트레스성 성기능 장애>라고나할까.. "
" 아...그럴지도 모르겠다. 참, 혜미 언닌? 가게에 있어? "
" 아니, 아마도 방에서 화장 고치고 있을걸. "
" 뭐야, 큰 언니 가게로 보내놓고 그새 한바탕 한거야? 정말 못말리는 한쌍이다. "
혜미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선영을 본다.
" 어, 언제 왔어? "
" 응, 조금 전에..언닌 좋겠다. 밤이나 낮이나 큰 언니 눈치 볼 걱정도 없고 그새 또 뒹굴었다며? "
" 얘는...하하하..."
" 신랑 한약은 먹어봤지? "
" 응, 몇번 먹었어. "
" 그럼, 잘 먹을 수 있겠다. 우선 붕어 엑기스를 주문해서 먹여봐. 붕어는 정자를 생성시키니까 꾸준히 먹으면 이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좋하하게 될테니까, 하하하.."
" 오빤 언니들한테 지치지도 않아? 난 언니들이 부러워 죽겠는데..."
" 그래도 쉬엄쉬엄 하니까 그렇게 지치지는 않아. 하다가 힘들면 가끔 바꾸기도 하거든. 아직도 이렇게 팔팔한데뭐. "
" 하하하..."
선영은 팔팔하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정재의 지퍼 부분에 시선이 간다.
" 남편도 남편이지만 마누라가 남편을 딴집 남자들과 절대로 비교를 해도 안되는거야. 잠자리를 비교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어떤집 남편은 어떻다는데 그러면서 비교를 하게되면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거든. 그것도 남편의 기를 살리는 좋은 말도 아니고 오히려 기를 죽이는 말이라면 그 여자의 남편은 점차 그 여자에게서 몸과 마음이 멀어지겠지. "
" 그럼, 무조건 울 남편 최고라고 해야겠네. "
" 그렇지. 별로 시원찮아도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울 남편 최고라고 해봐. 그러면 그때부턴 신랑도 좀 더 잘하려고 집중을 하게되고 계속 그 말을 듣기 위해서라도 많이 노력을 하게 되잖아. "
" 정말...어쩜 그렇게 잘 알아? 역시 울 남편 최고다. "
" 하하하..."
기분이 좋은 혜미가 정재에게 안기듯 기대어 온다. 정재가 혜미의 어깨를 껴안으며,
" 어때? 지금..."
" 지금? 안돼..."
은근히 좋으면서 선영의 눈치를 본다.
" 난 괜찮으니까 둘이서 잠깐 방에 들어갔다 와. 난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차들이라도 구경하고 있을께. "
" 아냐, 얜..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우리 때문에 선영이가 삐지겠다. 하하하.."
" 그래, 하루빨리 선영이도 우리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이었어. "
선영이 정재와 혜미를 보며,
" 응, 고마워. 근데 아까부터 빼꼼히 내다볼려는 그건 어떻게 설명이 안되겠다. "
" 뭐? 하하하.."
혜미가 정재를 보더니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수가 있었다.
" 정말로 대책없는 사람이네. "
" 내 잘못이 아냐. 이렇게 이쁜 선영이랑 마주보고 있으니 이게 내뜻과는 상관없이 고개를 쳐드는 걸 어떡해. "
" 그럼, 순전히 선영이가 이쁘서 그런 거니까 선영이 잘못이네. 이제 큰일 났다. 난 이젠 힘이 없어서 안되니까 선영이 니가 달래줘야겠다. "
혜미가 웃으며 선영이에게 얘길하자
" 언닌...아무렴 나 때문에 그럴까? "
그러면서 그 말이 싫지가 않은 눈치다.
" 내가 옆에서 지키고 감시하길 잘했지. 안그럼 둘이서 벌써 무슨 일이나도 났을거야. "
" 그러게."
" 하하하..."

"둘이서 어딜 갔다 오는거야? "
" 나중에 자세히 말해줄께. 지금은 말하기가 곤란해서..."
" 이젠 나한테도 비밀로 하는거야? "
" 그게 아니고..."
변명을 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정재가 서둘러 나가자,
" 무슨 일이야? 지금까지 나한테 한번도 말 안하고 어딜 간 적이 없었잖아. 심각한 일은 아니지? "
" 응..."
정재가 나가고 없으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혜미의 눈치를 모를리 없는 아내가 한번 더 다그쳐 묻는다.
" 나 몰래 둘이서 함께 있다가 오는 건 좋아. 어차피 남도 아니니 얼마든지 이해를 할 수 있어. 하지만,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얘길 안하더라도 나중에 알게되면 무척 기분이 나쁠 것 같다. "
" 미안해, 언니! 언니몰래 비밀을 만들건 뭐가 있겠어? 선영이 일로 지금까지 셋이서 같이 있다가 왔어."
" 선영이? 무슨 일인데? 어서 말해봐. 궁금하잖아. "
혜미는 어제 선영의 집에서 있었던 얘기와 지금껏 함께 있었던 내용을 아내에게 다 들려줬다.
" 어쩌면 저녁때 얘길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잖아. 그냥 모른척하고 있어봐. "
" 그래, 선영이 한텐 심각한 일이겠지만 들어보니 별일도 아닌네뭐. "
얼마후 정재가 돌아왔다.
" 날씨가 너무 더워. "
아내가 주는 냉커피를 마시며 앉는다. 혜미가 정재의 옆에 앉으며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준다.
" 참, 당신한테 할 말이 있어. "
" 뭔데? "
" 오전에 이 사람이랑 집에서 선영이하고 같이 있었어. "
" 그건 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 "
혜미가 정재에게 조용히 얘기했다.
" 세상에 비밀이 어딨어? 더군다나 우리 사이에..."
" 무슨 일인데 그래? "
아내가 모른척 물어본다.
" 응, 이사람이 아무 얘기도 안해? 어제 선영이가 고민을 털어놓기에 내가 농담삼아 이 사람이랑 함께 해결을 해보자고 했었거든. 오늘부터 하기로 했는데 선영이가 정말 올 줄은 몰랐어. 그래서 셋이서 같이 있다가 온거야. "
" 하하하..."
아내와 혜미가 동시에 킥킥대며 웃어댄다.
" 왜? "
" 아냐, 아무 것도..."
얼마전 선영이가 사는 아파트의 배수관을 뚫어준 집에서 전화가 왔다.
" 예, 예, 곧 가겠습니다. "
" 어디야? "
" 응, 선영이가 사는 아파트에서 걸려온 전화야. 얼마전에 갔었던 집있잖아, 여섯살짜리하고 일곱살짜리 별난 아들이 있다는 집...그집이야. "
" 아, 그럼 이번엔 좌변기겠네? "
" 응, 오늘은 그냥 가서 해주고 올려고 그래. "
" 왜? 그래도 받아야지. "
" 아냐, 그냥 해주고싶어. "
" 나도 갈까? "
" 언니 혼자서 바쁠텐데...괜찮겠어? "
정재가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 말할지 기다린다.
" 그래, 오래걸리는 것도 아니잖아. 지난번처럼 옆길로 새지말고 끝나면 얼른 와. "
" 알았어, 갔다올께. 언니! "
혜미와 함께 그집으로 갔다.
" 욕실엔 물이 잘 내려가죠? "
" 예, 꼼꼼하게 해주신 덕분에 잘 내려가요. "
좌변기의 물을 몇번 내려보더니,
" 혹시 아이들이 이 속에 프라스틱 같은걸 띄워놓고 뱃놀이를 하지 않았나요? "
" 잘은 모르겠지만, 가끔 그렇게 노는 것 같았어요. 근데, 물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도 알아맞추시네요? "
" 예, 물소리를 듣고 어느정도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
연장통을 열면서,
" 혹시 이물질이 튈 수도 있으니 문을 닫고 나가 계세요. 다 끝나면 말씀드릴께요. "
그집 여자와 혜미가 나가자 정재는 얼른 장비를 끄낸다. 이럴땐 장비라고 해봐야 별다른게 없다. 그저 흔히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것이기도 한데 변기 구멍과 비슷한 크기의 노즐을 끼워 압력으로 밀어서 뚫는게 최고인 것이다. 두,세번 시도를 하니 막혔던 변기가 확 뚫렸다. 다른 때 같으면 좀 더 시간을 끌었을텐데 오늘은 어차피 서비스로 고쳐주는 것이라서 일찍 끝내기로 했다.
" 이제 다 되었어요. "
" 벌써요? "
" 예, 한번 해보세요. "
여자가 밸브를 제끼니 물이 시원스럽게 내려간다.
" 정말 시원스레 잘 내려가는군요. 수고하셨어요.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
" 아뇨, 놔두세요. 얼마전에 배수관 막혔을때 이것도 봐드릴려고 하다가 그땐 제가 시간이 없어서 못해드렸거든요.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렇게 수리를 하고나니까 찝찝했던 마음이 풀려서 오히려 제가 좋습니다. "
" 그래도...고생하셨는데 어찌..."
" 그럼, 커피나 한잔씩 주세요. "
여자가 커피를 타온다.
" 저 밑에 아파트 사거리 있죠? 빌라 옆에있는 통닭집이 저희 가게거든요. 혹시 주문하실 일이 있으시면 애용해주세요. "
그러면서 스티커를 몇장 내려놓는다.
" 아, 그러시군요. 알았어요. 꼭 주문해서 먹도록 할께요. "

" 어떻게 됐어? 갔다온 얘길 해줘야지? "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으려니 지루했던지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얘길해달라고 조른다. 혜미가 갔다온 얘길했다.
" 오늘은 흔들 필요가 없었겠다. 근데..아이들이 변기 속에서 장난감으로 뱃놀이를 한건 어떻게 알아낸거야? "
" 욕실 벽쪽에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케릭터가 붙어 있는게 아니라 순전히 배 그림만 있었어. 그리고 지난 번에 갔을때 보니까 이미 막혀서 물이 내려가질 않는 욕실 바닥에 물이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고여 있었거든. 그건 아이들이 뱃놀이를 했기 때문에 물이 그 정도로 고여 있었던 거야.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추측이었지만 말야. 그래서 그 정도로 별난 아이들이라면 변기 속에 장난감을 띄워서 충분히 뱃놀이를 하고도 남았을거란 생각이 갑자기 드는거야. "
" 그래서 뱃놀이를 하지 않았냐고 물어본 것이구나. "
" 응, 만약에 아이들이 그러고도 남을 정도로 별나기 때문에 내가 물어봤을때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도 있고...그 여자 딴에는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도 별난 아이들이라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던거지. "
" 하하하...정말 못말려. 근데, 어떻게 뚫은거야? "
" 그건 뭐, 나라고 별 수 있겠어? 집에서 쓰던 거 있잖아. 공기로 압축시켜서 뻥 뚫는거 말야, 그걸로 뚫은거지. "
" 하하하...역시 타고났다니까. 근데 왜 돈을 안받은거야? "
" 돈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그만한 일에 돈을 안받았으니 그 여자가 고마운 마음에 주위에 소개를 해줄 것이고 통닭을 시켜도 우리집 통닭을 시켜먹을 확률도 크잖아. "
" 하여튼 당신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

정재와 혜미의 노력 덕분인지 선영은 날이 갈 수록 밝아졌다. 요즘은 밤이 너무 짧다며 은근히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혜미 또한 선영의 고민을 해결한다는 이유로 정재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고 때로는 선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씩 스릴을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
취미로 하는 요리 모임도 아파트 단지내에선 이미 소문이 나있어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혜미는 재료를 관리하면서 짭잘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벨 소리에 나가보니 옷 가게 미경이가 와있었다.
" 어서 들어와, 이 시간에 왠일이야? "
" 응, 가게에 가니까 집에 있을거라고 해서 왔어. "
" 혜민? "
" 저방에... 선영이랑 같이 있어. "
그때, 혜미와 선영이 나온다.
" 미경 언니 왔구나. 이 시간에 누군가 했지. "
" 선영이도 와있었네. 지금 밖에 비 오더라. "
" 그래? 아파트라 비소리가 안들리니 몰랐다. "
" 선영인 갈수록 더 이뻐지는 것 같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
" 아냐...좋은 일은 무슨..."
" 신랑이 잘해주는 모양이지? 얼마나 잘해주길래 피부도 이렇게 고와? "
그러면서 슬쩍 선영의 팔을 쓰다듬는다.
" 언닌...참..."
" 하하하..."
모두들 웃고 떠들며 진한 농담으로 들떠있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즈음 미경이가 입을 열었다.
" 내가 요즘 심각한 고민거리가 하나 있는데,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그래도 갑장이라면 날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어. "
" 잘했어, 어차피 선영인랑도 한가족처럼 지내니까 말을 해도 돼. 아님, 둘이서 얘기하려면 방으로 옮기던지. "
" 아냐, 나도 같이 얘길하다보니 차라리 같은 여자니까 더 말하기가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 그래, 무슨 고민인데? "
" 응, 비아그라 알지? 갑장은 써본 적 있어? "
" 아니, 난 그런게 필요가 없잖아. 이게 너무 잘 되서 탈이지만...하하하.."
이번엔 미경이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 전에는 한번 하고나면 잔뜩 풀이 죽어서 잘 안됐거든. 어딜가더니 비아그라를 잔뜩 사와서는 지속 시간이 너무 오래가니까 쓸데없는 생각이 나는가봐. 자꾸만 이상한 걸 요구하잖아. 첨엔 마지못해 들어줬는데 계속 그러니까 정말 싫어. 요즘은 비아그라를 먹지 않아도 아예 그런 쪽으로만 생각을 하는 것인지...약을 먹었을때하고 안먹고 할때하고는 또 다르잖아. 그런건 생각도 않는다니까. "
" 하하하...부부 사이에 못할게 뭐있어? 한,두번은 다 해보잖아. 너무 자주 요구해서 그런게 싫으면 분명하게 얘길 해야지. 그러고보니 그 방법도 있었는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
" 뭐? 갑장은 그런게 필요없다며? "
" 응. 비아그라는 필요가 없지만 그 이상한 걸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야. "
" 쳇...하나같이 남자들이란..."
" 하하하..."
옆에서 듣고있던 혜미와 선영이 웃는다.
" 내가 생각할 땐 갑장 신랑은 비아그라를 끊어야겠다. "
" 그런 것도 중독성이 있는 것인지 고쳐지질 않는가 보더라구. 내가 아무리 애원하고 사정해봐도 그때 뿐이거든. "
" 그것도 어쩌다 한,두번이지..매번 이상하게만 하다가 정상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싱겁고 별 재미가 없는 모양이더라구. 그래서 히로뽕이나 마약을 하는 사람들도 약에 의존해서 말 그대로 약기운으로 살다가 하루 아침에 약을 끊으려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이 눈 앞이 캄캄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없는 것 같더라구. "
" 뭘 그리도 잘 알아? 설마 마약같은 것도 해본 건 아니겠지? "
" 아냐, 난 그런거하곤 거리가 멀어. 내가 잊어버릴지 모르니까 당신이 잘 기억하고 있어. 엎친데 덮친격이라구...알았지? "
" 응, 근데 잘되려나 모르겠다. 내가 싫다고하면 그만이지만 지금으로선 나도 호기심이 있긴 한데..."
정재와 혜미가 의미있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살며시 웃는다.
" 둘이서 무슨 싸인을 주고 받는거야? "
" 응, 그런게 있어. 정작 비아그라가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잘못 쓰니까 그 파트너가 생고생을 하는거지. "
혜미와 선영이 웃었다.
" 평소엔 얘길하면 두번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한번 흥분하기 시작하면 안되는가봐.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
" 참나...둘이서 조용히 해결 할 일을 괜히 나한테까지 와서 얘기하는 의도가 뭔지 궁금하다. "
" 왜?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그래? 그래도 속마음을 터놓고 편하게 얘길 할 수 있겠다싶어 찾아왔는데 너무한거 아냐? "
" 미안해, 나는 그런 뜻으로 얘기한 게 아니고..."
" 그럼, 나하고 저 방에서 30분만 얘길 할 수 있어? "
" 좋아, 30분동안 얘기만 하자는데 못할 것도 없지 뭐, 안그래? "
정재가 혜미를 보며 웃는 얼굴로 얘길하자 혜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미경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서 방으로 들어간다. 정재가 일어나며 혜미와 선영이 보며 웃는다. 그리곤 뒤따라 들어갔다.
" 어니! 둘이서 무슨 얘기하는지 들어볼래? "
" 얘는..궁금하지만 그럴 순 없지. 설마하니 둘이서 그럴려구, 절대로 그럴리가 없어. "
"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있잖아. "
" 그래도 나는 막고싶어. 남편을 못믿으면 누굴 믿어. "
" 나도 오빠가 나한테 신사적으로 잘 대해주는걸 보면 누구보다도 더 믿고싶어. 어떨땐 내가 그렇게도 매력이 없나 싶어 나 자신에게 실망을 할 때가 많아. "
" 아냐, 내가 볼땐 우리 그이는 널 좋아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네게 관심이 많아. 몇일 전에도 봤잖아. 밤새도록 언니랑 셋이서 놀았고, 아침에 니가 오기 전에도 나랑 잠깐 몸을 풀었었거든. 그런데 너랑 마주앉아 얘길하면서도 꿈틀거리는거 말야."
" 응..."
" 나도 울 언니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그이는...아닐거야. 절대로...내가 확신해. "
" 그래, 나도 오빠를 믿어, 별일 없겠지 뭐. "
거의 한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정재와 미경이 방에서 나왔다.
" 둘이서 무슨 얘기한거야? "
" 아냐, 아무 것도..."
혜미와 선영은 더이상 묻질 않았다. 그들은 진한 농담을 계속 주고받으며 웃고 떠든다. 그러나 미경이만은 말없이 정재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미경이가 일어나더니 가겠다고 한다.
" 벌써 가려구? "
" 응. 가게에 나가봐야지. 좀 있다 올거지? "
" 응, 난 얘기할 게 좀 남았거든. "
" 그래, 그럼..."
정재가 엘레베이트 앞까지 따라 나간다.
" 가르쳐준대로 해볼께. "
현관을 나서며 둘이서 하는 얘길 혜미와 선영이 듣게 되었다. 조금 후에 정재가 들어와 앉았다.
" 아까 무슨 얘기야? 뭘 가르쳐 준대로 해본다는 거야? "
" 그거...그런 게 있어. "
" 치..나도 교육을 받는 교육생이란 말야. "
혜미가 토라진듯 돌아앉는다.
" 왜? 내가 있어서 말 못하는거야? "
선영이까지 나서자 안되겠다 싶었던지,
" 그런 건 아냐, 사람은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때로는 아무나 붙잡고 속 시원히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거든. 아무리 같은 내용일지라도 첨엔 우리가 다 있는 앞에서 고민을 털어놨지만 갑자기 숨기고 싶어질 때도 있는거야. "
" 난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
선영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앞으로 선영이도 30분만이라도 좋으니 나하고 얘기 좀 하자고 먼저 그럴 때가 있을거야. 그것도 시간이 너무 짧다며 안타까워할 날이 있을 거거든. 일단 오늘은 미경이의 고민을 다같이 들었고 어떻게 해결이 날지를 지켜보면 되겠다. 선영이도 함께 지켜봤으니 결과를 봐가면서 나한테 먼저 면담하자고 할 날이 틀림없이 있을걸. "
"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 되었으면 좋겠다. "
선영이 미경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자,
" 밤까지 기다리려니 내가 미칠 것 같은데 당신 지금 나하고 면담 좀 해주겠어? "
" 참나...세상 살다보니 나한테 면담을 하자고 하는 일도 다 생기고...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
" 하하하..."
" 언니! 얼른 갔다와. "

모처럼 쉬는 날이다. 오늘따라 비가 많이 내려서 쉬기로 했다. 비가 내려서인지 다들 우울해보인다.
" 내가 찌짐이라도 해줄까? "
" 나중에 먹어요. 오늘은 푹 쉬고 싶어요. "
" 그럼, 영화라도 한편 볼래? "
" 아니, 싫어. "
이래저래 우울해 있는 아내들을 위해 정재가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했지만 먹혀들질 않았다.
" 잠시만, 커피 끓여올께. "
아내와 혜미는 베란다로 가서 의자에 앉아 밖을 내려다 본다. 정재가 커피를 타오며,
" 오늘따라 둘이서 추억에 잠긴거야? 왜들 말이 없어? "
" 잠시 생각 좀 했어. 당신과 언니를 만난 이후로 너무나 행복해서 내가 어떻게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 좀 했어. "
" 당신은 무슨 생각했어? 설마 이 사람과 반대는 아니겠지? "
아내가 말없이 정재를 보더니 미소 지으며,
" 왜?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아? "
" 당신한테 잘 해주지도 못하고 항상 미안한 마음뿐인데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야. "
아내가 큰 소리로 웃는다.
" 미안해, 정말..."
" 그런말 마요. 우린 부부잖아요. 난 지금껏 당신과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후회한적 없어. "
" 절대 한눈 팔지않고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 맹세했는데...술과 노름으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아내와 혜미를 보며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인다.
" 내가 기분좋게 허락했잖아요. 이젠 그만해요. 그리고 그렇게 힘없이 쳐져있으니 보기에도 안좋아요. 자, 어깨를 펴 봐요, 어서..."
" 당신이 혜미를 받아들이던 날이 생각나. 몇일을 두고 고민하고 날 원망해도 시원찮을 판에 너무나 쉽게 승낙을 하니까 내가 정말 못난 인간이다싶어 지금까지 맘에 걸리는거야. "
" 당신이 혜미가 우리랑 같이 살았으면 하길래, 평소에 당신이 혜미를 좋아했었고 혜미도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는데 순간적으로 갈등은 했었어요. 물론 내가 싫다고하면 지금쯤 혜미랑 같이 있지는 못했겠지만..."
" 조금이라도 싫으면 싫다고 하지 그랬어? 난 지금이라도 당신이 한마디만하면 열 길 불 속에라도 뛰어들 각오가 되어있고 당장에 이 밑으로 뛰어내리라고 하면 그렇게도 할 수 있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잖아? "
"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허락한거에요. 당신은 마음이 여려서 내 말이라면 지금도 뭐든 할거란걸 잘 알아요. 우리가 첨 만났을때...당신이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고 싶었어요. 당신이 날 버리지만 않고 당신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며 살고싶어요. "
" 미안해. 이제 두번 다시는 당신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을거야. 날 믿어줘. "
" 여기서 또 실망을 시키려구요? 난, 당신을 믿어요. 혜미도 착하고 순수해서 다른 사람도 아닌 혜미라면 그래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그게 현실로 되어버린거에요. "
" 여보! 난...당신의 약점같은건 맘에 두고있지도 않아. 우리가 첨 만났을때 내가 그랬었지? 지금 현재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야. 언제나 더 잘해주질 못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야. 혜미도 당신에게 더 잘할거고 나도 잘하려고 노력할께. "
" 응, 언니! 나도 언닐 위해서라면 뭐든 다할거야. 날 쉽게 받아줘서 무척 놀랬지만, 앞으로 언니한테 정말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어. "
" 그래, 그런 각오면 된거야. 우리 열심히 사랑하며 살자. "
" 응, 언니..."
" 지금처럼...당신도 혜밀 위하고 혜미도 언니한테 시기하거나 괜한 욕심으로 맘 상하는 일이 없이 지금처럼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어. 한가지 맘에 걸리는게 있다면 혜미를 동거인으로 올려놔서 맘에 걸리지만..."
" 난, 괜찮아요. 이렇게 좋은 언니 곁에서 당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 수 있어 마냥 행복한걸요. "
" 그래, 고마워, 내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두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을거야. "
아내가 일어서더니 밖을 내다보며,
" 밖에 비가 많이 온다. "
" 응, 비가 내리니까 동동주에 파전 생각이 난다. "
" 지금 해줄까? "
" 파전도 해줄 수 있어? "
"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되니까 말만해. "
" 동동주는 사놓은게 냉장고에 있다지만 파는? 파도 있어? "
" 응, 다듬은 파를 신문에 돌돌 말아서 비닐 팩에 넣어 야채실에다 놔뒀어. 언제든 당신이 원하면 바로바로 준비할 수 있도록 말야. "
" 역시...이래서 울 남편 최고라니까. "
그러면서 혜미가 정재를 껴안고 뺨에다 뽀뽀를 한다.
" 하하하.."
" 잠시만 기다려, 얼른 해가지고 올께. "
" 응 "
아내와 혜미가 얘기하는 동안 정재는 주방으로 가서 파전과 동동주를 가지고 온다.
" 벌써 다 됐어? "
" 응, 금방인데 뭐..."
" 정말 빠르다. "
" 일단 건배부터하고 또 부쳐올께. "
세사람은 잔을 부딪히며 동동주와 파전을 먹는다.
" 비도 오고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정말 맛있다. 이 안에 뭘 넣은거야? "
" 홍합이 있길래 총총 썰어서 넣었더니...괜찮지? "
" 응, 확실히 맛있어. "
정재가 가더니 이번엔 정구지 찌짐을 가지고 온다.
" 정구지도 있었어? "
" 벌써 준비해뒀지. 하하하...두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한다니까 참, 족발도 있는데 가지고 올까? "
" 아뇨, 그건 나중에 먹어요. "
" 이젠 기분이 좀 풀렸어? "
" 술도 한잔 먹었고, 알딸딸하기도 하고 당신이 이렇게까지 애를 써주는데 기분 전환이 안될 수가 있겠어? "
" 또 먹고싶은게 있어도 배가 불러서 못먹겠다. "
정재가 아내와 혜미의 손을 포개어 두 손으로 감싸쥔다.
" 우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지내자. "
" 응..."
" 당신도 혜미에게 잘 대해주고 혜미도 언니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니까 얼마나 좋아. 나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 상하는 일 없이 언제나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 "
" 알았어요. 화나는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참고 지금처럼 화목한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할께요. 물론 혜미도 잘하겠지만..."
" 그래, 언니! 나도 잘할께.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내가 몇배로 더 노력할께. "
" 두 사람 모두 고마워. 나도 두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할께. 지금도 혜미가 옆에서 잘 감시하면서 도와주고 있지만 앞으로도 우리의 행복이 깨어지거나 두 사람이 나 때문에 실망하는 일은 없을거야. "
" 혜미가 옆에서 감시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기나하나? 처음부터 딴 사람들은 맘에도 없는데 혼자서 혓물켜는거 아냐? "
" 아냐, 언니! 이이는 내가 안지켰으면 벌써 선영이랑 사고 쳤을거야. "
" 아,아냐...혜미가 괜히 그러는거야. 당신은...괜한 일로 신경 쓰이게 그런 말은 왜해? "
" 내가 틀린 말했나 뭐. "
" 어떻게 된거야? 어서 이실직고해. 안그럼 정말 화낼지도 몰라, 혜미야! 어서 말해봐. "
" 저, 그게..."
혜미는 정재가 선영이랑 마주앉아 얘길하며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길해줬다.
" 당신..."
아내는 화가 난 표정으로 정재에게 눈을 부아렸고 정재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쩔쩔맨다.
" 뭐라고 변명이라도 좀 해봐. "
" 그게...일종의 시각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내가 은근히 진한 농담도 하고 그러다 보니...그래도 지금은 선영이도 많이 좋아졌잖아. "
" 그래도 그렇지 그러면 안되잖아. "
" 솔직히...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당신과 혜밀 생각하면서 조심하고 있는데도 잘 안돼. 그리고 혜미도 옆에서 감시하잖아. "
" 그럼, 선영이랑 있을 때 나랑 잠시 한 것은 선영일 생각하며 했을 수도 있겠네? "
" 아냐. 그건..."
" 시끄러워요, 오늘밤부턴 이불 한장 줄테니 베란다에서 자도록해요. 화장실 같때 말곤 절대로 들어오지 마. 현관 밖으로 내쫓으려다 봐준거니까 그렇게 알아. 알겠어요? "
" 저기...알았어..."
아내의 표정을 보니 쉽게 용서해 줄 것 같지가 않아 이내 포기하고 만다.
"괜한 얘길 해가지고..."
혜미에게 원망하듯 말하자 아내가,
" 혜미에게 뭐라고하면 지금 시간부로 말도 못하게 할테니 그리 알아요. "
"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
" 아무래도 내가 또 실수를 한 것 같아.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는데 나 때문에 이이가 고생을 하게 생겼으니..."
" 아냐, 말 잘한거야. 앞으로도 나한테 얘기해줘. 가게에만 있는다고 아예 날 바로 취급을 한다니까. "
" 언니! 한번만 용서해줘, 우리가 잘 지내기로 약속한지가 10분도 안됐는데 내 말 한마디에 이러면...내가 얼굴을 들 수가 없어, 날 봐서라도 한번만 용서해주면 안돼? 언니..."
" 아냐, 두번 다시는 엉뚱한 맘을 못먹도록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고쳐야돼. "
" 언니...제발..."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서인지 혜미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내에게 애원하자,
" 혜미야! "
" 응..."
"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말 몇마디에 서로 오해를 하고 질투하면서 틈이 생기면 안되거든. 난 지금 질투를 하거나 오해를 해서 이러는게 아냐, 그리고 비록 이이가 친동생같은 선영이 앞에서 체면도 없이 그랬다는 사실에 조금 화가나긴 했었지만, 따지고보면 선영일 위해서 그런거잖아. 그렇기 때문에 이이가 한 행동은 잘못이긴해도 부득이하게 한 것이니까 용서가 돼. 하지만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가 틈이 생기지 않고 잘 살기 위해서는 항상 말조심을 해야돼. 넌 내가 알건 다 알아야하고 우리 사이에 그 정도 말이야 해도 괜찮겠지 생각하면서 허물없이 말을 한다지만,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일지라도 더 조심해야 우리 사이에 틈이 안생기니까 항상 조심해야해, 알았지? "
" 알았어, 언니! 명심할께. "
" 난 이이를 사랑하지만 너도 때론 친동생처럼 좋아하고 사랑해. 그렇기 때문에 너나 나나, 우리의 행복을 위해선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단거야. 그럴 일도 없겠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널 이집에서 쫓아낼 수도 있으니 쫓겨나지 않으려면 항상 말 조심하고 몸가짐도 바르게 해서 눈 밖에 나질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되는거야. 내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
" 응, 언닌 생각이 참 깊어. 언닐 존경해. 그리고 사랑해, 언니! "
그러면서 얼른 아내의 뺨에 입을 맞춘다.
" 얘는..징그럽게 왜이래? "
" 이젠 용서 해주는거지? "
" 알았어. 당신! 혜미가 아니었으면 오늘 베란다에서 자야하는데 특별히 봐주는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
" 고마워. "
" 그리고...앞으로 선영이 있을 때 그 짓좀 하지마요. 나이 들어서 뭐하는 짓이에요. 도대체..."
" 아, 알았어. 이제부턴 정말 조심할께. "
" 오늘은 혜미랑 잘테니 당신은 혜미 방에서 자요. 이 참에 자제를 하는 교육을 시켜야겠어. 오늘부터 일주일간 그렇게 해요. "
" 일주일은 너무 가혹한데.."
" 그럼, 5일간. 더 이상은 안봐줘. 혜미 너도 낮으로 내가 옆에 없어도 절대로 사정 봐주면 안돼. 알았지? 만약에 그러다 내 눈에 걸리거나 그랬단 얘길 듣게되면 그 날은 우리가 산산조각나는 날이야.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혜미 니 역할이 중요한거니까 니가 잘해야돼, 알았지? "
" 알았어, 언니! 이번만큼은 언닐 실망시키지 않을께. "
" 좋아, 믿어볼께. "
" 오늘 점심은 뭘로 먹을까? "
" 갑자기 비빔 국수가 먹고싶은데 혜민 뭘 먹을거야? "
" 나도 비빔 국수가 좋겠다. "
" 그럼, 맛있게 할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
정재는 주방으로 가서 물을 올려 놓는다. 그리곤 물이 끓을 동안 냉동실에 얼려둔 묵은 김치를 끄내어 한쪽에 내려둔다.
물이 끓자 국수를 넣고 삶는다. 면발이 퍼질동안 내려놓은 김치를 잘게 썰었다. 면발이 알맞게 퍼지자 삶은 국수를 소쿠리에 부어서 찬물에 담구어 씻었다. 씻은 국수를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뺀다. 그리곤 총총 썰어놓은 김치에 고추장과 참기름, 다진 마늘을 넣고 1회용 비닐 장갑을 낀 손으로 주물러서 양념이 골고루 섞이도록 한다. 그릇에 국수를 담고 버무려놓은 김치 양념을 적당히 얹어 다시 손으로 주물러서 섞어준다.
" 이젠 다 됐어, 어서 와서 먹어. "
" 이게 뭐야? 아무리 비빔 국수지만 국물이 하나도 없잖아. "
" 그래도 맛있으니 한번 먹어봐. 꼭 국물이 있어야되면 물을 좀 붓던지..."
혜미가 한 입 먹어보더니 놀란다.
" 정말 맛있어. 묵은 김치의 시원함과 깊은 맛도 있고 구수한게 정말 괜찮은데. "
" 괜찮다니 다행이다. 혹시라도 국물을 찾으면 어쩌나 했거든. "
" 참, 어제 밤에 보니 너무 신 김치도 있던데, 그건 시어서 못 먹잖아. 찌짐이라도 부칠거야? "
" 아니, 잘봐. "
정재가 어젯밤의 신김치를 가지고 온다.
" 한번씩 먹어봐. "
" 먹어보나마나 시어서 별로지. "
"그래도 먹어봐. "
아내와 혜미가 먹어보더니 인상을 찡그린다. 정재가 웃으며 뒤돌아서 무언가를 한다. 그리곤 다시 신 김치를 내민다.
" 또 먹어봐. 아까하곤 맛이 전혀 다를거야. "
아내가 먼저 신김치를 먹어본다. 혜미가 옆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본다. 아내는 김치를 맛보더니 환한 얼굴로 웃는다.
" 정말 맛있다. 다른 김치로 바꾸었을리는 없는데.."
" 어디? 나도 맛좀 보자. "
혜미가 신김치를 집어서 맛보더니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 아깐 시어서 도저히 못먹을 정도였었는데...이상하다..."
" 어떻게 한거야? "
" 다 방법이 있지. "
정재는 웃기만 했다.
"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맛이 이렇게 달라? "
" 난 시어서 못 먹고 버릴줄 알았는데 이렇게 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까 도저히 믿기질 않아. "
" 하하하..."
" 안가르쳐 줄거야? "
" 나중에 가르쳐 줄께. "
" 아잉..지금 가르쳐줘잉.."
혜미가 애교스럽게 말한다.
" 하하하...알았어. 가르쳐줄께. 김치가 시어서 못먹겠다 싶을땐 대부분 찌찜을 해서 먹잖아. 찌짐이 아닌 그냥 김치로 먹고싶을땐 꿀 있잖아. 꿀을 넣어서 버무리면 맛있게 변해. "
" 아, 비법은 바로 꿀이었구나. "
" 앞으로도 가르쳐줄게 많으니까 시간이 날때마다 하나씩 배우도록해. "
" 알았어, 잘 배워둬야지. "
" 요리 모임은 어때? 요즘은 거의 3일에 한번씩 모이는 것 같던데..."
" 응, 이젠 사람들도 제법 많이 모여서 제대로 자리가 잡히는 것 같아. 다들 반응이 넘 좋아서 탈이거든. "
" 사람이 많으면 장소가 비좁겠네.."
" 그래도 비좁으면 비좁은대로 다 되잖아. 사람이 많다보니 다들 요리를 할 수는 없는거고...몇명만 하는거야. 그 대신에 다들 먹을 수 있는 만큼 요리해서 시식은 해야하니까.."
" 그 정도로 많아? "
" 응, 언니! 모임을 시작하길 정말 잘했어. 요리 학원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수입은 짭잘하더라. 계산상으론 재료비도 빠듯해서 가스비나 전기세 같은건 엄두도 못내도 말 그대로 적자인데 어떻게 된게 매번 모임이 있을 때마다 돈이 척척 들어오는게...내가 재료를 관리하면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야. 이게.."
" 그래, 이이는 성격이 단순해서 깊이 계산하지는 않아. 그리고 항상 손해보고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뭘 많이 남기는 법도 없어. 나도 재료에 대해선 얼마전에도 들었는데 좋은 재료를 싼값에 많이 사오기 때문에 그런거야. 아무리 똑 같은 재료라도 제 값을 다주고 한번으로 거래를 끝내느냐 아니면, 좀 더 싼 가격에 꾸준히 거래를 할 수 있느냐를 보고 질 좋고 가격이 싸니까 그 집에서 계속 구입을 하게되니까 서로가 좋거든. 그래서 그기에서 남는거야. "
" 나도 담에 재료를 사러가면 같이 따라 다니면서 잘 봐야지. "
" 그런걸 깊이 따지고 계산할 게 뭐 있어? 암산으로도 팍 팍 되잖아. "
" 짭잘하다면 어느정도로 짭잘하다는거야? 나도 좀 알면 안돼? "
" 잠시만,,,언니에게 통장을 보여줄께. "
혜미가 일어나 통장을 가지러 간다. 정재는 커피를 타서 식탁에 내려 놓는다.
" 언니! 여기 있어. 한번 봐. "
" 어디? 이게 전부 재료비만 따로 모은거야? "
" 응, 그때 그때 재료를 구입할 땐 이이가 다 구입하고 이것저것 떼고 남는거만 여기에다 넣어둔거야. "
" 그래서 수입은 있는데 지출은 없어구나. 정말 많기는 많다. 괜찮은 장사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사람들도 많이 알게되고 요리는 요리대로 배우고 수입도 좋으니까 혜미가 나보다도 더 낫다. "
" 언닌...아무렴 언니한테 비할려구? "
" 그렇게 말 안해도 안뺏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좋다. 혜미 너한텐 딱 맞는 직업이네. 하하하..."
" 완전히 체질이지. "
" 당신까지 이러기야? 정말..."
" 치...알고보면 다른 수입이 또 있는데..."
" 또 있어? "
" 응..재료비 관리하는 통장은 이거고 다른 통장이 또 있어. "
" 뭔데? "
" 취미로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스테미너식 요리라고 하니까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많아. 특히, 모임에서 배운대로 음식을 해먹고 좋아졌다는 소문을 듣고 오게되는데..실제로 먹어보니 정말 좋다는 사람들도 있고...또, 어떤 사람들은 선영이처럼 면담을 통해서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로 돈 봉투를 주잖아. 이이는 안받는대도 기어이 주고 가서 할 수 없이 받았는데 그러면 이이는 그 돈을 나한테 주거든. 난 이 통장에다 넣어두고..."
그러면서 혜미가 다른 통장을 하나 더 보여준다.
" 그런 건 고마움의 뜻으로 주는거니까 받아도 괜찮아. 너무 사양해도 실례가 되거든. 근데 얼마씩 들었어? "
" 응, 보통 2, 30만원은 돼. 최하가 10만원이고...어차피 병원가서 검사받고 치료를 해도 그 돈은 더 든다고 하면서 주더라. 평소엔 남편들이 시원찮다가도 면담을 하고나면 확실히 다르다는걸 느끼나봐. 그런 날이면 돈 봉투의 두께가 다르기도해. "
" 어떻길래 그래? "
" 보통 2, 30만원 선이고 적게는 10만원이지만, 남편들이 충분히 만족시켜 주는 날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50만원을 넣어서 오는 사람도 있어. 여자들이 많다보니 게 중에는 톡 톡 튀려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런 여자들은 전날에 정말 남편이 잘 해줬는지는 몰라도 50만원이 든 봉투를 내미는 사람도 있어. "
" 그런 사람이 몇명이나 돼? "
" 두, 세명은 돼. 크크크.."
얘길하려다 웃음이 나오는지 참질못하고 혜미가 큰 소리로 웃는다.
" 왜 그래? 나도 좀 웃자. "
" 이이는 만원이든 10만원이든 성격상에라도 그런 돈은 안받으려고 하잖아. 그러니 그 여자들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끄냈던걸 도로 넣기도 뭣하잖아. 한사코 이이가 안받으려고 하니까 결국은 나한테 주는거야. "
" 하하하...정말 골때리는 사람들이 많에. 그건 그렇고...이렇게 재미있는 얘길 왜 이제서야 하는거야? "
" 평소엔 다른 얘길하다보니 자꾸만 까먹게 되잖아. "
" 하긴...나부터도 그렇더라. "
" 하하하..."
" 정말 골 때리는 것은 누구든지 면담만 했다하면 90%는 만족한 답변을 얻는다는거야. 그런걸보면 정말 신기하더라. "
"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그래? "
아내가 정재를 보며 얘기해 달라고 조른다.
" 궁금해? "
" 응..."
" 그럼, 5일간 독방 생활하는 걸 풀어주면 말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아. "
" 치..됐네요. 안듣고 말지..."
아내가 눈을 흘긴다.
" 알았어, 얘기해줄께. "
" 내가 의사도 아니고 어떻게 치료를 해 줄 수가 있겠어. 굳이 치료라고 표현을 한다면 심리 치료라고나 할까..한마디로 말하면 가려운델 긁어주는 정도야. 가끔은 혜미도 옆에서 듣고 있는데 면담이라고 해봐야 별다른 것도 없어. "
" 맞어, 대부분 면담 내용이 그기서 그기니까 내용도 거의가 비슷해. 다만 요리를 하면서 이이가 가끔 진한 농담도하고 듣기좋아하는 얘길 들려주면서 편하게 대해주니까, 부부 사이에 말 못할 고민도 이이에게 서스럼 없이 하게 되는 것 같아. 어떨땐 내가 질투를 느낄 정도로 아주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여자들도 있어. "
" 그 정도였어? "
" 응, 정말 웃긴다. "
아내가 장난끼 섞인 말투로 정재에게 안기듯 기댄다.
" 당신 나하고 잠깐 면담 좀 해요. "
" 정말? "
" 하하하..."

정재가 혜미와 선영이하고 집에 있을 때 미경이가 찾아왔다.
" 어서와, 뭘 잔뜩 가지고 왔어? "
" 응, 선물이야. "
" 어디 보낼려고? "
" 아니, 내 고민을 해결해줘서 고맙다는 성의니까 받아줘. "
" 뭘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어? "
" 이건 갑장거고 이건 두 마나님들거...이건 선영이거야. "
" 내 것도 있어? 내가 뭘 했다구...암튼 고마워 언니! "
" 먹을 것도 많이 있네. 이건 뭐야? 케이크잖아. "
" 응, 자축하려고 준비했어. "
혜미가 케이크를 식탁 위에 내려다놓고 샴페인을 꺼내어 온다.
" 내가 능력만 되면 갑장에게 뭐든 다 해주고싶어. 정말이야..."
" 말만 들어도 고맙다. 어떻게 된건지 얘기 해줄 수 있어? "
" 응...지난번에 왔을 때...갑장이 가르쳐 준대로 했더니, 첨에 2,3일간은 의심이 많더라구. 그래도 들키지 않게 했더니 어느 순간에 이상한 짓을 요구하질 않는거야. 그래서 그 다음부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어. "
" 우린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되리라곤 전혀 예상도 못했어. 정말 잘 됐다. 축하해 언니! "
" 어떻게 쉽게 해결됐는지 말해 줄 수 있어? "
몹시 궁금했던지 선영이가 꼬치꼬치 캐묻는다.
" 하하하...이럴 줄 알았으면 선영이랑 내기를 할 걸 그랬어. "
" 무슨 내기? "
" 갑장이 잘 해결되면 나한테 뽀뽀라도 해주기로 말야. 하하하..."
" 뽀뽀라면 내가 얼마든지 해줄 수가 있지. "
미경이 얼른 정재를 껴안고 뺨에다 뽀뽀를 한다. 순간 혜미와 선영은 멍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본다. 정재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킨다. 미경은 정재를 보더니 목을 껴안으며 입술을 갖다댄다. 정재에게서 떨어져 나온 미경이 혜미에게,
" 미안해, 정말...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땐 울 신랑이랑 이혼까지 하려고 마음먹고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자 싶은 심정으로 갑장에게 찾아왔었던거야. 근데, 여기와서 내 고민을 다 털어놓고 얘길하다보니 속은 시원했지만 한편으론 자존심이 상했었어. 그래서 부끄러운 마음에 30분동안 만이라도 방으로 들어가서 숨고 싶었던거야. 내가 갑장이랑 방으로 들어갔을때 도대체 무슨 얘기을 하나싶어서 무척 궁금들 했을거야. 우린 30분정도 아무말도 안했어. 그냥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어. 30분이 훨씬 지났을즈음 갑장이 나한테 조용히 그러더라. 비아그라랑 똑 같이 생긴 비타민이나 영양제 같은걸로 바꾸어보면 어떻겠냐고...만약에 비슷한게 없으면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영양제와 바꿔보라고 말야. "
" .... "
" 약국마다 돌면서 비슷한걸 겨우 구해서 바꿔치기도 하고 가루로 만들어서 섞기도 했더니 사람이 맹숭맹숭한거야. 그러다 제풀에 지쳤을때 너무 남용을 해서 잘못하다간 고자가 될 수도 있으니 이제부턴 약을 먹지말자고 했지. "
" 그래서, 그 다음엔? "
" 갑장이 가르쳐 준대로 했지 뭐. "
" 언니! 어떻게 했길래? "
" 응, 내가 얘기했었지? 비아그라를 먹고 이상한 짓만 요구한다구? "
" 그랬었지. "
" 약발이 없으니 맹숭맹숭한게 재미도 없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으니 밤일엔 아예 흥미를 잃어버린 거야. 내가 너무 약에만 의존해서 무리하게 하니까 이런 결과가 생긴거라며 이러다간 고자가 될 수도 있으니 이제부턴 내말만 들어라고 했지. 병원가서 상담하면 괜히 사람만 실없이 보이니까 우리가 조용히 해결을 해보자면서 남편을 눕혀놓고 내가 올라갔지뭐..하하하...그랬더니 점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거야. 이제 두번다시는 비아그라 따윈 찾지않겠대. "
" 하하하..."
" 그러고보니 오빠가 분명한 해결책을 알고 있었네. "
" 아냐, 그런건 아니고...운 좋게 앞뒤가 들어맞았을 뿐이야. "
선영이 한참동안 정재를 쳐다보더니,
" 나하고도 30분만 면담 좀 해주면 안돼? "
" 하하하..."
정재와 혜미가 큰 소리로 웃었다. 미경이 혜미를 보며,
" 미안해, 혜미야! 니 허락도 없이 갑자기 끌어안고 키스해서..."
" 괜찮아, 언니! 키스도 한번으로 족해야지 넘 자주하면 사고가 나거든.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
" 하하하..."
미경이가 케이크를 잘랐고 정재는 샴페인을 따랐다. 오늘처럼 기쁨에 들뜬 미경이를 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미경이가 무척 행복해 보였다.
미경이와 선영이 가고나자 혜미와 둘만 남았다. 다른 때 같으면 선영이가 늦도록 같이 있을텐데 볼 일이 있다며 미경이를 따라 나선 것이다.
" 여럿이서 왁작지껄 하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
" 나도 그래, 아까...미경 언니가 뽀뽀했을때 기분...어땠어? "
" 어떻긴..."
" 뽀뽀를 했으면 됐지, 키스는 왜해? "
" 참나...지금 질투하는거야? "
" 당신은 이쁜 미경 언니랑 키스를 해서 좋을진 몰라도 난 아니잖아. "
" 알아, 당신 맘...당신이 조금만 이해를 해주면 되잖아. "
" 그래도 당신한테 안기고 그러니까 싫은걸 어떡해. "
" 그래, 내 잘못이다. "
" 아냐, 당신 잘못...앞으론 조심해, 알았지? "
" 응, 조심할께..."
정재가 혜미를 와락 끌어안는다.
" 왜이래? "
" 가만히 있어봐, 우리 둘뿐이라서 분위기도 좋고...어때? "
" 안돼, 어서 가게에도 나가봐야지. 언니가 기다리잖아. "
" 조금 늦는거가지고 뭘 그래, 괜찮으니까...."
" 그래도 안돼, 매일같이 늦으니까 내 입장도 난처하단말야. "
" 정말 싫어? "
정재가 화가난 목소리로 말하자 헤미는 어서 가게로 가자고 재촉한다.
" 이대로 나가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까 조금만..."
" ... "
혜미는 안되겠다고 생각이 되는지 조용히 정재가 이끄는대로 안긴다.
" 나, 정말 당신 때문에 울고싶단 말이야. "
그러면서 울먹인다.
" 미안해, 힘들게 해서..."
" 나랑 둘이서만 사는게 아니잖아. 나도 매번 언니한테 미안해 죽겠어. 언니도 좀 생각해야지. 어째 당신 기분만 생각하는거야? "
" 알았어, 제발...진정해. 내가 잘못했어. "
" 뭘? 뭘 잘못했다는거야? "
혜미가 화가나서 정재에게 소리를 지른다.
" 지금은 가게로 나가고 저녁에 보자. "
" ..... "
" 어서 갈 준비해야지. "
" 괜찮겠어? "
" 응, 당신이 괜찮으면 난 괜찮잖아. "
" 알았어, 얼른 준비할께. "
가게로 가는 길에 옆에 앉은 혜미에게,
" 당신 괜찮아? "
" 응, 괜찮아. "
" 미안해. "
" .... "

가게로 들어섰다.
" 오늘은 일찍 오네. 무슨 일이야? 이렇게 일찍 오는 날도 다 있고..."
" 응, 선영이가 볼 일이 있다면서 미경일 따라나서기에 일찍 왔어. "
" 미경 언니 왔었어? "
" 응, 혜미가 얘기해줄거야. "
혜미는 아내에게 미경이가 찾아온 얘길 한다.
" 무슨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
" 나하고 언니 입으라고 옷을 가지고 왔어. 선영이 선물도 옷이고...저이는 지갑이랑 옷 한벌 맞춰입으라고 돈 봉투를 넣어뒀던데 성질이 그런걸 받겠어? 도로 가지고 가라고 하니까 이번엔 미경 언니가 버럭 화를 내잖아."
" 왜? "
" 내가 주는 돈은 돈도 아니냐며 오히려 큰소릴치니까 이이는 아무말도 못하더라. 미경 언니가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며 어찌나 좋아하던지...고민거리라 해결되고나니까 장사도 잘된다면서 연신 싱글벙글이야. "
" 그래, 장사가 안된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보단 일도 잘 해결되고 장사도 잘되니 얼마나 좋아. 정말 잘됐다. "
아내가 옆 테이블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 정재를 보면서 말한다.
" 당신은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요? 어디 아파요? "
" 아니, 아프긴..."
" 혜미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
" 아냐, 언니! 일은...아무일도 없었어. "
" 아무 일도 없는데 저래? 기운이 없어보이는데 꼭 어디 아픈사람 같다. "
" 아픈데 없어, 내가 당신하고 혜미한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서 그런거지. "
" 당신도 참...미경 언니가 봉투에 얼마를 넣었어? "
" 몰라, 아직 안세어봐서..."
" 어서 꺼내봐, 한번 보기나 하자. "
" 그래, 같이 세어보자. "
혜미와 아내는 봉투에서 돈을 끄낸다.
" 우와. 많은데...백만원은 되겠다. "
" 어디? 정말이네. "
혜미가 돈을 세어본다.
" 정확히 백만원이야. 어떡하지? 너무 많은데.."
" 어떡하긴 돌려줘야지. 당신은 어때? 어떡하면 좋겠어요? "
" 그냥 챙겨둬. "
" 네? "
얼른 돌려줘야한다고 할 정재가 넣어두라고 하자 아내와 혜미는 무척 놀란다.
" 여보...? "
" 미경이는 지금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야. 그동안 혼자서 속앓이를 하며 얼마나 힘들었겠어? 우리가 이걸 돌려주면 더 힘들게 만드는거야. 그러니 아무말 말고 넣어두는게 미경일 위해서라도 좋을 것 같아. "
" 듣고보니 정말 그렇네. 당신 보기보단 전혀 다른 면이 있어요. 평소에 야한 얘기도 하고 농담도 잘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이젠 정말 당신을 존경해요. "
" 말로만 존경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봐. 난 지금 미칠지경이란 말야. "
" 어머, 그랬어? 그럼 안되지. 내가 뽀뽀라도 하고 손으로 살살 달래줄까? 크크크.."
" 됐어, 이따가 밤에 잘하면 되지 뭐."
" 밤에? 하여튼 당신은 못말린다니까 하하하..."
그때 문이 열리면서 택배 기사가 들어온다.
" 택뱁니다. "
" 아, 예..."
그저께 주문한 호박 엑기스가 도착한 것이다.
" 요즘 다들 호박을 잘 먹으니까 금방금방 줄어드는 것 같아, 여기 두 박스는 가게에 놔두고 먹기로 하고, 두 박스는 집에 갖다놓자. "
" 집에도 두 박스정도 있던데. "
" 알아, 떨어지기 전에 미리 준비해놓는거야. "
" 그럼, 나머지는? "
" 한박스는 선영이네 주고 한박스는 박사장 주고...두박스는 미경이 갖다주자. "
" 그저께 주문할때 열박스를 주문하는 것 같더니..."
" 응, 두박스는 내일 도착할거야. "
혜미가 묻는다.
" 두 박스는 뭐야? "
" 선영이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우리가 주문할 때 같이 주문해달라고 부탁한거야. 지금 친정에 갔는데 내일온다고 하잖아. 그래서 내일 도착하도록 했어. "
" 자기네들이 직접 주문하면 될걸 왜 당신한테 부탁해? "
" 당신은 그렇게 보고도 모르겠어? "
정재는 혜미가 답답하다는 듯이 얘길하는데 아내는 조용히 웃고만 있다.
" 내가 한번에 많이 주문하면 그만큼 할인이 되겠지? "
" 응..."
" 그러면 한 박스에 4만원이고 두 박스에 7만원하는데, 10박스를 한꺼번에 주문하면 그기서 또 깎을 수가 있겠지? "
" 아...이제야 알겠다. "
" 그러면 자연산 엑기스에서도 많이 팔아서 좋고 나는 싼 가격에 많이 구입해서 좋고, 선영이네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개인적으로 사는 것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으니 모두가 좋잖아. 난 그기서도 총 구매 금액의 10%가 또 마일리지로 적입이 되니까 두배, 세배로 좋겠지? "
" 치..결국은 돈이네. "
" 하하하..."
아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는다.
"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혜미는 장사하곤 거리가 멀어. 그냥 내 밑에서 치킨 배달이나 하는게 딱이겠다. "
"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
" 아이참...자꾸 놀릴거야? "
" 하하하..."
" 바람도 쐴겸 미경이네 가게에나 갔다올까. "
정재가 일어선다. 혜미도 얼른 일어서며,
" 그럼, 나하고 같이 가요. 나도 은행에 들러야하니까..."
" 잠깐 갔다올께. "
" 예. 천천히 와도 돼요. "

"어서오게, 또 작업인가? "
"아뇨, 아저씨 뵈러 왔어요. "
" 나? 무슨 일로? "
" 꼭 일이 있어야만 오나요? 그냥 아저씨가 생각나서 왔죠. 이거 놔두고 드세요."
" 그게 뭔가? "
" 호박 엑기스인데요, 이번에 주문할 때 아저씨 드릴려고 한 박스 더 주문했어요. "
" 안그래도 가게를 지날 때마다 들러서 잘 얻어먹고 있는데 나 때문에 일부러 주문할 게 뭔가? 도로 가지고 가서 드시게. "
" 아뇨, 이건 아저씨 드릴려고 주문한 거니까 그냥 놔두고 드세요. "
" 이거 항상 신세만 지고 면목이 없구먼. "
" 신세라뇨,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끼리 나누어 먹는거지, 언제 있는 사람들이 우리랑 어울리는거 보셨어요? "
"허허...참..."
"그리고..이거 받으세요. "
" 그건 또 뭔가? "
" 내일이 아저씨 생신일이잖아요. 내일 드리려다 아침에 일찍 교대하고 퇴근을 하시면 저녁때나 되어야 만날 수 있겠다싶어 오늘 온거에요. "
" 아닐세. 내가 어찌 염치도 없이 돈까지 받겠는가? 그러면 안되는걸세. "
" 아뇨, 저도 형편이 이렇다 보니 자주 드리지는 못해도 내일이 생신일이라 드리는거니 얼마되진 않지만 받아주세요. "
순간, 김씨 아저씨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 내가 뭐라고...해마다 잊지않고 이렇게 내 생일까지 다 챙겨주는데 난 이모양 이꼴이니..."
" 그런 말씀 마세요. 가끔 좋은 말씀 해주시는 게 얼마나 힘이되고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제가 힘들고 어려울땐 항상 아저씨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떠올리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거든요. 그래서 항상 힘이 되고 있어요. 그러니 고마워 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제가 아닙니까. 하하하.."
" 정말 고맙네,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죽어서라도 절대로 잊지 않겠네. 이승에서 못갚으면 저승에서라도 꼭 갚겠네. "
" 그런 말씀 마세요. 언제는 제가 뭘 바라고 하나요? 어쩌면 이것도 제가 전생에 아저씨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갚으려는 것일런지도 모르잖아요. "
" 그렇게 말을 해준다면 조금이나마 내 마음이 편하네만...내 언젠가는 갚을 날이 있을걸세..."
" 이젠 그만 하시고...내일 아침엔 할 수 없지만, 오후엔 조금 일찍 나서셔서 저희 가게로 오세요. 미역국이라도 끓여놓을테니 함께 식사라도 하시죠. "
" 아닐세...가게에서까지 폐를 끼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
" 아니에요. 잘 아시다시피 제 아내도 아저씨 생신일을 기억하고 있고 잊을까봐 달력에다 동그랗게 표시까지 해놓았는데 안오신다면 정말 섭섭하게 생각할겁니다. 그나마 낮에 댁으로 찾아뵙겠다는 걸 피곤하실텐데 푹 주무시도록 하고 오후에 일찍 나서셔서 가게로 오시라고 말씀 드리겠다고 했거든요. 그러니 출근하실 때 조금만 일찍 나오시면 함께 식사를 하실 수가 있잖아요. 만약에 안오신다면 저나 네 아내나 다들 섭섭하게 생각할테니 앞으로 저희들을 안보실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꼭 오셔야됩니다. 아셨죠? "
" 허허...알겠네, 근데..이게 얼만가? "
" 예, 50만원입니다. "
" 헉, 이렇게 많이..."
" 제 아내들이 십만원씩 내고 제가 이십만원을 내고보니 사십만원이라...'사'짜는 아무래도 불길한 숫자이니 피하자싶어 십만원을 더 보태어 오십만원을 채운겁니다. "
" 그래도 그렇지, 너무 많아서..."
" 저희들의 성의니까 아무 말씀마시고 받으세요. "
" 정말 고맙네, 잘 쓰겠네..."
" 아저씨도 참...커피나 한잔 타주세요. 갑자기 아저씨께서 타주시는 커피가 먹고싶네요. "
" 아, 잠시만 기다리게. "
정재는 김씨 아저씨가 타주는 커피를 받아서 마신다.
" 아직까지 아저씨께서 타주시는 커피 맛이 변하지 않은 걸 보니 앞으로 십년은 거뜬 하실 것입니다. "
" 예끼, 이사람아, 나 보고 앞으로 십년을 더 살라고? 하루라도 빨리 눈을 감아야지, 내가 하루라도 더 버티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내자신에게 업을 지게되니 못할짓이야. "
" 업이라뇨? 사람 목숨이 얼마나 질긴건데 업이라고 말씀 하시면 안되죠. "
김씨 아저씨는 담배를 끄내어 물었다.
" 아참, 혼자서 드시는거라 양념과 후라이드를 반반씩 가지고 왔어요. 야간에 순찰 도시고 출출하실 때 드시도록 하세요. "
" 이렇게 다 퍼주고 자넨 뭘 먹고살아? "
" 하하하...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돌고 도는게 돈이고 어차피 돈은 쓰는대로 벌고 버는만큼 쓰게되어 있잖아요.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것도 좋겠지만, 그 돈을 얼마만큼 값지고 보람있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마디로 저는 즐기면서 사는 인생을 선택했어요. "
" 그러다 나처럼 될려구? "
" 하하하..."
두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다음날 오후에 김씨 아저씨가 가게로 왔다.
" 어서 오세요. 안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
아내가 김씨 아저씨를 맞이한다. 혜미가 미리 준비해둔 케이크를 식탁 위로 올려 놓는다.
" 뭘 이런거까지 준비를 다하고..."
" 작은 걸로 준비했어요. "
정재가 냉장고에서 준비해둔 샴페인을 끄내어 온다.
" 지금 출근하시는 길이시라 샴페인으로 준비했어요. 다같이 축배는 들어야죠. "
초를 다꽃은 혜미가,
" 이제 시작해요. 아저씨! 어서 소원을 비시고 촛불을 끄세요. "
김씨 아저씨가 초를 끄자 다같이 박수를 친다.
" 다들 고마워요, 이 늙은이가 뭐라고..."
더이상 참질못하고 김씨 아저씨가 눈물을 보이고 만다.
" 오늘만큼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 오늘같이 좋은 날에 눈물을 보이시다뇨, 진정하시고 케이크 좀 드셔보세요. "
정재는 혜미가 담아주는 케이크를 받아서 김씨 아저씨 앞으로 놓는다. 그리고 빈잔마다 샴페인을 따랐다.
" 자, 이 샴페인으로 아저씨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축배를 들겠습니다. 아저씨! 뭐하세요? 오늘의 주인공이신데 한말씀 하셔야죠? "
" 해마다 잊지않고 생일까지 챙겨주시고...여러모로 보살펴 주어서 무어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올해는 작은 마나님까지 저의 생일을 챙겨주시는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다들 소리없이 웃으며 서로를 쳐다본다. 김씨 아저씨의 인사말이 끝나자 샴페인을 마셨다.
아내가 일어나더니 밥을 뜨고 혜미는 국을 담는다. 정재는 밥과 국을 식탁에 올려 놓았다. 김씨 아저씨는 연신 눈물을 삼키며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헤미가 커피를 타오자 아내는 조그맣게 포장된 걸 아저씨 앞으로 밀어 놓는다.
" 영양제에요. 뭐가 좋을지 생각해보니 도저히 생각이 안나더군요. 그래서 영양제를 준비했어요. "
" 생일 밥상을 차려준 것만도 고마운데 영양제까지..."
김씨 아저씨는 목이 매어 말을 잇지 못했다.
" 저도 준비했는데 그런 표정을 지으시면 안되죠. 저는 향수를 준비했어요. 혹시라도 아이들이 할아버지 냄새가 난다고 말을 함부로 할까봐 그런 소리 안들으시도록 향수를 준비했어요. "
정재도 무언가 가지고 온다.
" 저는 조그만 액자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가게에서 식구들 모두 아저씨랑 함께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었습니다. 가끔 가족 분들이 생각나시면 멀리 있는 친척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이웃 사촌이라도 보시며 마음을 달래어 보시라고 준비했습니다. "
다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한때를 보냈다. 김씨 아저씨가 슬슬 걸어서 가겠다며 한사코 뿌리쳤지만 정재는 차로 아파트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다.

정재가 가게로 들어선다.
" 이제 오세요? "
앉아있던 아내가 얼른 일어나며 정재를 맞이한다.
" 응, 혜미는? "
" 배달 갔어, 일이 늦었네. "
" 조금 힘든 일이었어. "
아내는 얼음을 띄운 쥬스를 가지고 온다.
" 으..시원한게 좋은데. "
" 혜미오면 재로 사러가야지? "
" 응, 오늘 준비를 다 해놔야 하거든. "
" 요즘 모임에 오는 사람들 반응은 어때? "
" 꾸준히 오는 사람들은 오고 나왔다 안나왔다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 "
" 별 재미는 없겠다. "
" 면담 신청하는 사람은? "
" 하하하...지금은 요리보단 면담을 할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그런대로 유지가 되니까 재미도 있고 아직까진 괜찮아. 박사장 부인이 재료에다 면담으로해서 돈이 좀 들어오는 걸 눈으로 직접 보더니 돈독이 조금 오르나봐. "
" 그 여잔 남편 관리하고 돈 욕심밖에 모르는 사람이잖아. "
" 어제는 나한테 찾아와서 요리 학원을 하는게 아니라 우리 모임에 이름을 붙인 형태로해서 자기가 가게를 내어보면 어떻겠냐고 그러잖아. "
" 당신 수입이 짭잘한걸 보니 은근히 욕심이 나는 모양이지. "
" 자기가 가게를 내어서 내가 재료를 대어주면 어떻겠냐고 그러잖아. 그래서 그렇게 하고싶으면 해보라고 했어. 재료는 내가 대어주질 않더라도 시장에 가서 사면 싸게 살 수 있으니까 그런건 천천히 알아보면 된다고 했어. 학원이야 허가를 내고 자격증도 있어야하고 전문 인력도 있어야 하지만, 지금처럼 모임 형태로 하는거야 신고만 하면 되니까.."
" 그 집에 사람들이 갈까? "
" 안그래도 그랬어. 지금은 월 회비도 없이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재료비만 내고 하는거지만, 가게를 이끌어 나가다보면 월 회비에다 재료비를 별도로 안받으면 운영이 안될거라고 했더니 우선에 가게를 시작하는 것만 생각하지 그런 건 생각도 안하나봐. 지금은 내가 이끌어 가는 모임이라 다들 나를 바라보고 오는건데 박사장 부인이 가게를 내면 그리로 갈려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런지도 의심스러워. 그러면 자연히 모임이 깨어질텐데...박사장 부인이 가게를 운영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할 수도 없잖아. "
" 그래도 당신을 볼려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 박사장 부인도 그 정도는 계산을 하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 내가 가게로 가서 특강을 해주고 그기서 면담도 하면 어떻겠냐고 그러길래, 지금은 우리끼리니까 농담삼아 면담이랍시고 한다지만, 가게로 가서 특강을 하면 괜히 가게만 어수선해지고 면담도 안된다고 그랬어. "
" 그랬더니 뭐래? "
"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운영이 잘되는 걸 봐가면서 수당도 좀 올려줄테니 그렇게 하자고 제안을 하는거야. "
" 그래서 뭐라고 했어? "
" 면담을 하는 것도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도 있고해서 비밀로 해야하는 만큼 안된다고 분명히 얘길했어. "
그때 혜미가 들어온다.
" 어서와, 수고 많았어. "
" 당신 와 있었어? "
" 응, 아까 왔어, 이리로 와. "
혜미가 정재의 옆에 앉는다.
" 박사장 부인도 당신이 없으면 자연히 모임이 깨어진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나봐. "
" 그래서 어느정도 자리가 잡힐때까진 날 붙잡아놓고 이용을 하려는 속셈이지. "
" 무슨 얘기야? "
혜미가 궁금해서 묻는다.
" 응, 요즘 모임이 잘되고 들어오는 수입이 짭짤하다 싶으니까 박사장 부인이 요리 학원 형태로 가게를 하나 내려고 하거든. 그래서 이이가 하는 걸 자기한테 물려주고 이이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특강만 좀 해주면 어떻겠냐고 그러잖아. 그대신 재료는 우리가 다 재어주고 말야. "
" 체..돈 독이 완전히 올랐네. 이사람을 붙잡아놔야 여자들이 오니까 데리고 이용하려는 속셈이잖아. 너무 속 보인다. 그래봤자 얼마 못갈텐데...아니, 그러면 앞으로 박사장 부인이 가게를 내고 다할테니 우린 재료나 대어주고 더이상 집에서도 하지말고 조용히 떨어져 나가달란 말이잖아. "
" 하하하...맞어."
" 당신은 어때? 그렇게 할거야? "
" 나야 상관은 없어. 지금은 박사장 부인이 돈 욕심에 그래도 박사장 부인을 보고 배우러 갈 사람은 몇명 안될거야. 당신도 알다시피 요리도 요리지만 대부분 나하고 면담이랍시고 은근히 야한 얘길 하면서 뭔가 해결해 보려는 사람들이 많잖아. 그리고 나도 요리 모임이 아니라 다른 모임을 또 만들면 그 사람들 나한테로 또 몰릴거야. 내가 그런 생각도 안하는 줄 아나. "
" 하하하...그렇게 하면 되겠네. "
" 그러면 결국은 박사장 부인도 돈만 날리게 되어있어. 나도 이참에 요리엔 전혀 간섭을 안한다는 조건으로 돈이나 좀 우려내면 그만이고..."
" 당신은 그런 거 안하잖아요. "
" 내 입으로 그런 말을 안하는 거지, 준다면 마지못해 받아야지 뭐.. "
" 하하하..."
" 내가 아무런 계산을 안하는 것 같아도 언제 이런 일이 닥칠지 몰라 요리를 가르쳐 주면서도 90% 정도만 가르쳐주거든. 그래야 지금처럼 누군가가 내 자리에 올라와서 자기가 원조라고 그러면 내가 할 말이 없게 되니까 핵심은 빼고 가르쳐 주는거지. 그동안 요리를 배운 사람들이 일대일 면담을 통해 더 배울려고 하는 것도 모임때 잘 가르쳐 주더라도 자기들은 아무리 해도 내가 만든 요리 맛을 못내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 "
" 역시...대단한 사람이야. 하하하...그럼, 면담을 통해서라도 배울려는 사람들에겐 다 가르쳐 주는거야? "
" 아니, 그러면 자기네들이 똑똑한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써 먹으려고 하거든. 그기서 또 중요한 걸 한, 두가지는 빼고 가르쳐 주잖아. "
" 그 사람들도 그걸 알아? "
" 그걸 알면 지금까지 꾸준히 오겠어? "
" 하하하..."
아내가 전화를 받더니 박사장 부인이라고 한다.
" 지금 기계를 수리하는 중이니 갈 수가 없다고 그래 . "
" 알았어. "
아내가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 잠시만 왔다가라고 하는데 왜 그런거야? "
" 자기네들이 답답하지 내가 답답한건 아니거든. 조금있음 박사장 부인이 이리로 올거야. 박사장 부인이 오면 혜미! 당신은 이런 저런 재료 이름을 대면서 많이 준비를 해야된다는 식으로 얘길하고 종이에다 적는 척해. 그리고, 당신은 수입이 짭짤한 것처럼 옆에서 말로써 바람을 넣으며 거들기만 하면돼. 알았지? "
"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
" 어쩔 수가 없는거야. 내가 이걸 그만두고 다른 걸 하더라도 또 욕심을 낼거야. 이 참에 프리미엄을 부친다고 생각하고 웃돈을 올려놓으면 다음엔 쉽게 달려들지 못할거야. 그래서 그런 거니 잘 해야돼. 알았지? "
" 알았어요. "
잠시후 박사장 부인이 가게로 왔다. 정재는 튀김 기계의 옆에서 전선 가닥을 자르다 말고 일어난다.
" 어서오세요. "
" 그게 고장났어요? 아직 멀었는 모양이네.."
" 아뇨, 이젠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
아내가 커피를 타온다.
" 무슨 일이에요? "
" 예...어제도 말씀드렸었는데 가게 때문에 의논드리러 왔어요. "
" 네..."
" 휴...이제야 다됐다. 우선 임시로 응급조치를 해놓았으니 또 고장나면 말해. "
" 수고했어요. "
" 가게 때문에 오셨다고요? "
" 예..."
" 가게는 알아보셨어요? "
(계속)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742  친절 직원을 추천하며...(진해 용원 의창수협)  [11]    임정수 2011/02/05 1458
741  나의 숙      임정수 2010/10/27 1648
740  원조 교제를 하던 여인      임정수 2010/07/30 1352
739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임정수 2005/01/24 1826
738  나를 찾아서      임정수 2005/01/26 1920
737  영미야!(추억을 정리하면서...)      임정수 2005/01/27 1879
736  < 낙원을 꿈꾸며 > - 3. 황홀한 사랑      임정수 2006/11/02 2479
735  겨울 나그네      임정수 2005/01/29 2048
734  올바른 믿음      임정수 2006/03/19 1582
 < 낙원을 꿈꾸며 > - 4. 요리 모임      임정수 2006/11/05 2167
732  21세기의 선녀와 나뭇꾼(대한 문학 세계 2009년 겨울호 꽁트에 수록)      임정수 2007/06/16 2617
731  냄새를 먹다.      임정수 2007/06/03 2251
730  흰 고무신의 추억      임정수 2007/06/12 2673
729  내 몸엔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소.      임정수 2007/06/13 2464
728  낚시 대회에서 생긴 일(2008년 가을호 대한 문학 세계 수필 산책 코너)      임정수 2007/06/14 2600
727  진~짜 거짓말      임정수 2007/06/15 2368
726  자장면 시키신 분 (2008년 여름호 대한 문학 세계 수필 산책 수록)      임정수 2006/11/10 2222
725  좌광우도(2009년 대한 문학 세계 여름호 수필 산책 코너에 수록)      임정수 2006/11/13 2459
724  나의 중학교 시절      임정수 2006/11/12 2305
723  < 낙원을 꿈꾸며 > - 5. 영애      임정수 2006/11/08 2385

 [1] 2 [3][4][5][6][7][8][9][10]..[39]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Ol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