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5/01/26, 조회 : 1922
제목  
 나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 / 임 정 수


4월의 날씨답지 않게 무척 무더운 기운이 감도는 맑은 날.
모처럼 해인사로 가기 위해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고속 도로를 달리며 바라보는 풍경은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르다.
푸르른 색채로 줄지은 산에는 살아 숨쉬는 대자연의 생동감 넘치는 힘찬 기운이 활기차게 약진을 하고 있으며,순환하는 세월의 자취가 짙게 배여 들고 있었다.
연분홍 빛과 보라색으로 치장한 진달래 또한 4월의 색상과 적당히 뒤섞여 어우러진 창밖의 경치를 멀거니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지난 시간의 자취에 끌려간다.
차는 막힘 없이 달리는데 의식은 자꾸만 뒤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시기라 나에게 직면한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 나가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며 뛰어 다녔었다.
하지만 그러한 평면적인 노력은 결과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의지가 약한데서 비롯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모든 걸 깨우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럴만한 시간도 나에게는 허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굳은 각오로 새롭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날이 갈 수록 실의와 혼돈으로 빠져드는 상황으로 전변(轉變) 되었다.
지난 날의 나의 감동과 희열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토록 천진난만하고 순진하기만 하던 "내"가 떠나고 남은 그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진정한 "나"와 참"나"는 찾지도 깨닳지도 못하고 나의 무지와 탐욕이 결국은 "나"를 이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 것 같다.
수 많은 시간과 나날들을 회한의 심정으로 지새어 온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마지막 자존심인 용기마저 꺾이고 말았으리라.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를 찾는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진다.
나의 의식은 지난 기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기억에 맞물린 회한과 반성이 현실로 나를 다시 이끌어내었다.
현실로 되돌아오자 이제는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 온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게 고난의 연속이었기에 세상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지로 삭발을 하였지만 가슴 속에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한다.
하루 하루의 삶을 힘들게 넘기며 시간의 장을 이어가다 보니 내가 어느 위치에 서서 어떤 생각으로 서 있는지를 모르겠다.
우선 나의 존재를 정확히 확인하여 지금의 위치를 주지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본래의 "나"를 찾아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된다거나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한 만큼 사람들이 공감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만약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된다고 하면 나의 힘이 미칠 수 있는가 없는가?
어떤 것이 예측되었는데 전혀 힘을 미칠 수 없다면 절망일 것이다.
반대로 힘을 미쳐 작용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대단히 작은 빛이겠지만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로써 무엇을 해 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저지른 잘못이라면 해결도 "나" 스스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처한 문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 보니 오로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모순이나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문제인 것이다.
나 혼자 열심히 노력하며 바르게 살려고 발버둥 쳐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어느 순간 세상과는 동떨어진 자신을 발견하곤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내"가 시간의 톱니바퀴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내가 아닌 외부의 문제에도 나의 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여기엔 어떤 희망적인 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강한 확신을 갖고서 많은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를 가져 나가는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나 혼자였던 공허한 시간들이 메아리처럼 느껴졌고, 내가 전후 좌우가 다 잘려져 나간 절벽 같은 데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짧은 대화나 깨우침을 통해서 내가 처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 어떤 면에선 비효율적이며, 나 혼자만의 수도와 수련을 통해서 한다는 것 또한 너무 늦다는 것을 알고는 직접 문제에 부딪히기로 했다.
한순간 세상의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나의 자리를 포기하려고도 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얘기 해왔던 것, 생각했던 것들을 다 덮은 상태에서 다시 관찰해 보니 내게 닿는 느낌이 전혀 새로운 것이다.
옛날 같으면 그걸 자꾸 풀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것까지도 버린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만약 내가 불행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바른 위치에서 나의 본질을 그대로 바라본다면 모든 사물을 근본에서부터 재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부정에서부터 철학이 출발하는 것처럼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남이 정해 놓은 것을 인정하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근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지고 훈련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의 진면목을 근원에서부터 밝혀내어 그것을 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려는 개념부터 정립이 되어야 어떤 혼란 속에서도 스스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것도 인정을 하지만 결코 의지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모든 사물을 본질에서부터 추구한다는 자세만 가지고 있으면 나를 찾는 문제는 어떤 이론으로부터도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서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자리잡고 있었을까?
나와 자신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 있었을까?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추구해 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나는 작은 믿음의 대가로 안정을 추구하지는 않았을까?
기존의 상식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나는 또 다른 긍정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들을 새로운 형태나 구조 속으로 받아들이는 근본적인 변화, 근본적인 부정이 필요하다.
결국 그기에는 혼란과 갈등이 따르며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혼란과 불안 속에 근본적인 변혁의 열쇠가 있는 것이다.
세상이 더욱 개방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갈 수록 불안정성은 더욱 증대한다.
여기에서 모순이 생겨나는데 통합적일수록 그것은 더욱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즉 혼란과 갈등은 불행의 징후가 아니라 나를 탈바꿈시키고 위기에 서 있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흔들리면 갈등과 혼란이 수반되고 그것은 오히려 통합성을 증진시키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개방하려고 노력한다.
만일 어떤 다른 무엇이 더 합당하다면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본질이라는 것은 굉장히 평면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나에게 무한정의 미래가 기약되어 있다면 아무런 관계가 없겠지만 지금은 내 생에 대한 기약이 없다.
이것은 내가 당면한 숙제이기도 하다.
어떤 효율적인 맥을 잡아가지 않고 남은 육신의 기간 동안 진정한 나의 본질을 찾으며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모터보트가 파도의 꼭대기를 치고 가듯 맥을 잡아 나간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정말로 작은 가능성을 갖고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흔히 밤벌레는 밤을 삶기 전에 떠나야 된다는 얘기를 한다.
그렇다고 밤을 삶기 전에 급하게 바로 뛰쳐나와도 밤벌레는 죽게 된다.
분명한 과제는 밤을 떠나기 전에 이미 나방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의 차원이 변해야 자기 삶을 보장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본질을 찾아 아무리 열심히 살아간다고 한들 차원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차원이 올라가면 시각의 한계도 달라진다.
예컨대 빛의 파장은 굉장히 넓지만 인간이 볼 수 있는 영역은 가시광선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볼 수 있는 한계 내에서만 모든 것을 분별하려 드는데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자신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초음파를 이용하는 박쥐를 보고 초음파 탐지법이나 레이더를 개발한 것처럼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보고서 응용을 해낸다.
이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 대해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관찰함으로써 개발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를 제한하고 있는 상태를 수긍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를 이해하면서도 극적으로 뛰어 넘으려는 자가 인간인 것이다.
만일 밤을 삶으려는 어떤 주체가 있다면 그가 밤을 삶지 않도록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나의 지혜를 맘껏 발휘하여 직접적으로 현실에 부딪히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스스로 재정비하여 자신의 내적인 성장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잔잔하면서도 커다란 파도 같은 시간에 나를 맡기고 진정한 "나"를 찾아 헤매인지도 벌써 3시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의 무거웠던 마음은 차츰 가벼워지고 있었다.
어떤 가능성의 문으로 들어서는 느낌, 아니 어둠의 미로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 듯 하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에 오늘따라 새삼 깊게 파고드는 나 자신이 한편으론 한심스럽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러한 매듭이 없다면 나에겐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의 본질을 찾으려는 자신에게 많은 깨우침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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