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7/06/16, 조회 : 2616
제목  
 21세기의 선녀와 나뭇꾼(대한 문학 세계 2009년 겨울호 꽁트에 수록)

21세기의 선녀와 나뭇꾼 / 임정수


가끔은 어릴 적 즐겨듣던 동화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특히, 동화 속의 내용과 비슷한 장소에 있을 땐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 때도 있다.

요즘은 집집마다 가스 보일러와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므로 시골에서가 아니면 나무를 때는 집을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넓은 땅덩어리 만큼이나 이름 난 명산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고,
지명 또한 정감있게 느껴지는 곳이 수두룩하다.

선녀가 올라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옥녀봉이나 선녀가 하강하여 가야금을 탔다는 옥녀 탄금대가 그러하며,
물 맑고 공기 좋은 깊은 산 어느 골짜기에도 전설이 있다면 당연히 선녀와 나뭇꾼이 등장한다.

명산을 찾아 다니다 보면 우연히 칠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던 장소에도 가보게 된다.
마침, 수심이 깊은 곳이지만 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여서
한번 눈길이 가면 그곳에서 영원히 헤어나질 못하는 그런 곳을 찾게 되었다.

찬 물에 손을 담그고 세수를 하고 보니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상쾌한 기분이 든다.
신발을 벗어 발을 담구었더니 가슴 속 까지 후련하면서 시원해져 왔다.

발을 담군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뿅~'하며 잔뜩 화가난 산신령님이 나타났다.
드라마나 전설의 고향처럼 그래도 산신령님이 등장할 땐 좀 더 멋있게 등장할 줄 알았는데,
어쩐지 등장하는 모습이 시원찮아서 산신령님에 대한 나의 기대가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질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산신령님을 보니 이마에 두르는 두건을 코에다 두르고 있는 게 아닌 가.
"아니, 누구신가 했더니 산신령님 아니세요?"
"으...음..내가 바로 산신령이니라. 푸후~"
"안녕하세요? 근데, 이마에 두르는 두건을 왜 코에다 두르고 계세요?"
"그건...너의 발 냄새 때문에 숨을 못 쉬어서 그래."
"네? 그럴 리가요. 전, 무공해라 발 냄새도 안 날 건데요."
"그럼, 너도 한번 맡아봐, 내말이 거짓말인지..."
한쪽 다리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크...정말 장난이 아니네요."
"왠만하면 발 좀 깨끗히 씻고 다니도록 해라."
"예..그럴께요."
"방금 오실 때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데, 그건 시각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인가요?"
"아니."
"그럼...?"
"너도 물 속에서 방귀를 뀌어봐 어떻게 되는지...별 걸 다 묻네."

"근데, 이곳엔 왠일로 온 것이더냐?"
"네,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좋은 짝을 못 구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는 중이랍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잘 찾아왔느니라."
"네? 정말요..."
"그럼,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선녀와 나뭇꾼이 만났던 장소이니라."
"우와~ 혹시,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도 아세요?"
"당근이지, 저길 봐, 나무에 도끼 자욱이 찍힌 흔적이 보이지?"
"네, 도끼 자욱이 선명하게 잘 보이네요."
한 오백 년 쯤 되었을까.
바로 저 곳에서 착한 나뭇꾼에게 내가 금도끼 은도끼 모두를 다 주었던 곳이잖어."
"아...그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좀 해주세요."
"이야기 하긴 정말 싫은데...알았어."

"그땐 이곳이 깊은 산 속이라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지."
"....."
"어느 날인가 나뭇꾼 하나가 찾아와서 나무를 하는 거야."
"그래서요?"
"그때 난, 점심을 먹고 오침 시간이라 낮잠을 잘려고 할 때였거든."
"....."
"겨우 잠이 들려는 순간에 나뭇꾼이 나무를 찍으며 노래를 부르는데..."
"네? 노래를 요?"
"응..나무를 하러 왔으면 나무나 할 것이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니 듣기가 거북해서 내가 더 고역이었어.
물론, 나뭇꾼 딴엔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하하하..."
"난 듣기가 싫어서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잔뜩 엎드린 채로 있었어."
"....."
"갑자기 풍덩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잠잠한거야, 그리곤 조금 후에 뒤통수가 뜨끔거리면서 눈에서 불꽃이 튀는 거야."
"왜요?"
"왜긴...알면서...나뭇꾼이 도끼를 빠뜨린 게지."
"아..."
"난 화가 나서 손에 잡히는 대로 잡고서 물 위로 나갔어."
"무얼 잡고 가셨는데요?"
"뭐긴 뭐겠어? 이곳이 인적이 드문 곳이긴 하지만 가끔은 나뭇꾼들이 왔다가곤 하는 곳이잖어.
그러다 보면 쌓이는 게 도끼밖에 더 있겠어?"
"아..그렇군요."
"나도 성질을 죽이며 살았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성질 같아선 그 나뭇꾼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고 싶었어."
"....."
"하지만, 인생이 불쌍해서 참았던 게지."
"나뭇꾼이 뭐래요?"
"응, 왜 이제사 나오냐고 그러잖어."
"예?"
"천천히 잘 들어 봐."

"에이..이제 나오시면 어떡해요?"
"아니, 왜?"
"제가 나무를 하다가 도끼를 그만 빠뜨렸는데, 오늘 일은 공쳤다 생각되어 그냥 가려던 참이었거든요."
"그럼, 내가 늦게 나온거라 그말이네."
"물론이죠. 신령님이 너무 늦게 나오신 거에요."
"그렇게 성질이 급해서 어디다 써? 정말 급하면 차라리 전기 톱을 들고 오질 그랬어?"
"가지고 올려고 했었죠. 근데...이곳엔 전기가 아직 안깔렸잖아요. 그리고, 제 건 충전식이 아니거든요."
"그런 때일 수록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야지."
"에이, 신령님두...신령님 동작이 너무 느리시니까 기다리기 지루해서 그렇죠, 뭐..."
"임마, 늙으면 다 그런 거지, 너두 나이를 먹어 봐."
"그렇게 동작이 굼뜨셔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차라리 이 참에 은퇴를 하시고 노후를 편안히 사시도록 하세요."
"아냐, 아직 정년이 될려면 2년은 더 남았어. 그나저나 이 도끼가 니 도끼냐?"
"에이, 신령님두...참, 일찍도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어떡해? 각본 상 이렇게 나와 있는 걸..."
"예..그럼, 각본 대로 할게요."
"어서해, 나도 낮잠자러 가야하거든...그래, 이 금도끼가 니 도끼냐?"
"아뇨"
"그럼, 이 은도끼가 니 도끼냐?"
"아뇨?"
"그럼, 이 도끼가..."
"에이..신령님두...시간 끌 거 뭐있어요? 그냥 다 주세요. 저도 바쁘단 말이에요."
"그래...알았어, 몽땅 다 가져가."
"더 있으면 얼른 얼른 주세요. 저도 이걸 갖다 팔아야 잘먹고 잘 살죠."
나뭇꾼은 자신의 지게에다 나무 대신에 금도끼와 은도끼를 잔뜩 묶으며 일어서려 했다.
"아참, 잠시만 기다려봐."
"또 왜요?"
"이거 좀 빼주고 가"
산신령은 나무꾼에게 뒤통수를 보여줬다.
"글쎄, 내가 말야...이러저러 해서 그렇게 했는데 갑자기 도끼가 날아오더니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찍어 버리잖어."
"쪼매 아프시겠네요."
"쪼매가 아니지, 죽을 맛이야."
"이젠 이 금도끼 은도끼를 장에다 내다 팔면 나무를 하러 올 일이 없을테니 안심하세요."
"그래, 이젠 무얼하며 살텐가?"
"이제 돈도 생겼는데 뭐하러 이 짓을 하겠어요.
잠시 유람이나 하며 쉬다가 여기저기 땅이나 좀 알아보고 부동산에다 투자를 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게 좋겠군."
"그럼, 갈께요.안녕히 계세요."
"잘가...행복해야 돼..."

그렇게 해서 나뭇꾼은 부자가 되어 지금껏 잘먹고 잘 살고 있고,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이렇게 한자리 만을 고수하고 있지.
"그 나뭇꾼 지금은 뭐해요?"
"왜? 가서 한자리 얻을려고? 무슨 벤처간 뭔가 한다고 그러더만 잘 모르겠어.
어여 뛰어 가봐. 혹시 알어? 경비원 자리라도 하나 내 줄런지..."
"치..제가 그깟 경비나 할 사람으로 보이세요?"
"경비라도 안하면 뭘 할려구?"
"글쎄요...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라는 데 산신령님과 저는 발냄새로 이루어진 인연이니 무언가 정보를 하나 주세요."
"어떤 정보를 줄까?"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아직 장가를 못 갔으니 소원이나 이루어 주시던지요...
그래도 한번은 써 먹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하...맞는 말이네. 가만...마침 좋은 정보가 있어."
"네? 정말요?"
"정말이구 말구..."
"어떤 정보예요?"
"바로 오늘 밤이 하늘에서 칠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하강하는 날이라네."
"아..."
"내말이 뭔 말인지 알지?"
"네, 알겠어요.근데, 사슴은 언제 등장하나요?"
"사슴? 그런 건 없어. 대충 건너 뛰자고."
"예, 그러면 저도 편하죠 뭐..."
"그럼, 기다렸다가 잘해보더라고."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께요."
"그려,그려. 그 맘 절대로 변하면 안돼, 알았지?"
"네, 저는 한번 먹은 마음은 절대로 안 변해요."
"알았어, 실수없이 잘해봐. 화이팅!"
"화이팅!"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 산새들도 제각기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들 가는 시각.
환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내미는 보름달 만이 내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늘 저멀리에서 부터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이어져 내려오더니
미끈하게 잘 빠지고 눈부시도록 예쁜 칠선녀가 사뿐히 내려오는 것이다.

선녀들은 조용히 날개 옷을 벗으며 수줍은 몸매를 물 속에 담근다.
'햐~ 어느 선녀의 옷을 고를 까?'
다들 예쁘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두마리 토끼를 다 쫓다 하나라도 제대로 못 잡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일단 아무 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숨기고 봐야할 것 같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물에서 나온 선녀들은 각자의 옷을 찾아 입기 시작했고,
그 중의 한 선녀는 날개 옷을 찾질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이 되었다.
'크크크 드디어 성공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하고 있으려니 여섯 선녀들이 돌아다 보며,
"이번엔 큰 언니가 당첨되었네, 언니! 잘해봐, 우린 갈께."
그러곤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어떡할까? 지금쯤 내가 쨘~하고 나타나서 '내 아를 낳아도..'그러면 뭐라고 할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을 거듭하며 갈등하고 있으려니 참다못한 선녀가 한마디 한다.
"어이! 내 날개옷 가져간 양반, 어서 나와보셔요."
"네...여기...나갑니다."

대답을 하고 나가려고 일어서니, 선녀가 나는 듯히 사뿐히 다가온다.
순간, 선녀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 동안에 유아기에서 부터 노년기까지 금방 지나 가버린 것 처럼
선녀의 얼굴이 쭈구렁 망탱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짜서까이..시방은 달거리도 끝난 쭈구렁 망탱이가 되었는디...
그래도 괜찮다면 퍼뜩 날 가져버리쇼이..."
'으악~ 선녀가 내려오기 전 시간으로 돌아갈래..'


"도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 산신령에게 못 들었어? 나뭇꾼 이야기 할 때 말야.
그때가 오백년 전 쯤이었으니 오백 스물 일곱 쯤 되었을 거야."
"켁..."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녀라면 원래 이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당연히 이뻐야지, 나도 한 때는 천상에서 알아주는 미녀였다우."
"근데...지금은 전혀 아니네요."
"그려...너도 나처럼 나이 들어봐, 나같이 안되는 가.."
최소한 처음에 내려올 때처럼만 되어도 좋으련만...
"아까 내려올 땐 안그랬잖아요."
"아까? 아..그땐 화장빨이었었지. 지금은 목욕을 하고 방금 나온 터라 화장을 못한 상태잖어."

"저..이 날개옷 도로 돌려드릴께요. 차라리 저를 오백 년 전으로 돌려놓으시던지
아님, 선녀 할머니가 오백 년 전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세요."
"너를 오백 년 전으로 돌려놓으면 넌 흔적도 없을테고...
내가 오백 년 전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면 서로가 못 알아 볼 수도 있잖아."
"그렇겠네요."
"내가 맘에 안드는 모양인디..나도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남 주기는 아깝고 혼자서 쳐먹고 설사라도 하라는 마음으로 자넬 벌 줘야겠어."
"네?"
"서로가 번거롭게 왔다갔다 할 게 뭐있겠는가?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 보면 모든 게 제대로 되어 있을걸...안그런가?"
"네?"

놀라서 눈을 크다랗게 떻다.
'오잉? 아무 것도 없다. 산이고 물이고...선녀도 보이질 않았다. 정녕 꿈이었단 말인가?'
어쩌면 꿈인게 다행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샤워라도 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전환하고 싶었다.

온 몸에 비누 칠을 하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크게 들렸다.
대충 헹구고 나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듣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뗘? 꿈인 게 좋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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