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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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작성일 : 2014/04/01, 조회 : 1398
제목  
 나를 찾아 떠나는 사월에 (시나브로8)

나를 찾아 떠나는 사월에 / 임정수




낯선 지역에서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아 나아가는데
저만치에서 노스님 한 분이 걸어오시는 겁니다.

두손을 고이 합장한채 인사를 올렸지요.
노스님께서도 합장으로 답례를 하시며 살포시 미소 지으시는 겁니다.

순간, 노스님의 인자하신 표정이 어찌나 해맑게 보이던지...
마치 고요한 은반위를 굴러다니는 수정같다고나 할까...

암튼, 노스님의 미소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온 세상을 다 가진듯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들이 다 내포되어 있어서
더이상은 그무엇으로도 표현키 힘든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나도 열심히 정진하면 노스님처럼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문득, 내 안의 <나>에 대한 의문에 휩싸이기도 하였지만,
결론은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매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성불이 있을거라는...
그렇게 희망적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절망과 낙심보다는...
이왕이면 희망을 품고 있으면
남은 앞날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여...

"그래, 무엇을 찾아 떠나는 중이신가요?"
"예...다름이 아니옵고...저자신을 찾아서 이렇게 헤매는 중입니더."

"자신이라..."
"....."

"내 눈앞에 있는 니는 무엇인고?"

"그게 문젭니더. 분명 '나'는 나인데, 내가 없으니 나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나'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내'가 없으니 이또한 '나'가 아니요,
내도 아니고 나도 아니니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지..."

"허허...거참...분명한 나도 내도 없는데 그림자는 뭐할라고 달고 다니누..."

마따, 그림자...
야! 니는 또 뭐꼬?

"모두가 부질없으니 다 내려놓고...배도 출출하니...
어디 가서 공양이라도 좀 합시다."
"예...그라입시더..."

인적이 드문 곳이라 인가도 눈에 띄질 않고...
한참을 걸은 후에야 집 한 채를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총총 걸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은 한식과 중식을 겸하는 식당이었으며
주로 논, 밭에 중참을 배달하고 있었습니다.

"어떤걸로 드시겠습니까?"
"나는 이도 시원찮아서...짜장면 한그릇 하고 짬뽕이나 한그릇 먹으면 될것 같은데..."
"예...그럼, 짜장면 하고 짬뽕으로 시키..."

"그리고...이왕이면 탕수육도 대자로 하나..."
"아...예...알겠습니더. 아지매! 아지매도 다 들었지예?"

"예, 들었어요, 짜장면 하나 짬뽕 하나에다 탕수육 하나... 금방 준비할께요."
"제것은 주문 안했는데예..."
"아, 예...뭘로 드시겠어요?"

"저는...짬뽕...꼽배기로 꾹 꾹 눌러가 주이소."
"예...호호호..."

"스님...그건 뭡니꺼?"
노스님께서 가지고 계신 조그만 보따리를 가리켰지요.

"이건 반드시 위급한 경우에만 풀어 보아야 하는건데...
제일 먼저 빨강, 그리고 노랑, 파랑...이렇게 풀어보면 위급할 땐 요긴하게 쓸 수 있는거라요."
"예..."

잠시후,
노스님께서 드실 짬뽕과 짜장면, 그리고 탕수육이 먼저 나왔습니다.

곧이어 식당 아지매가 내가 먹을 짬뽕을 들고 오며 슬쩍 윙크하면서
"싱싱한 오징어는 밑에 많이 깔아놓았어요."
그러면서 의미있는 미소를 짓는게 아닙니까.

'저...아지매...혹시...내한테 반했나?'

"어허...잘 먹었다."
내가 짬뽕을 반도 먹기 전에 노스님이 먼저 일어나시며
화장실의 위치를 물으시곤 밖으로 나가시는 겁니다.

식탁을 둘러보니 설거지를 안해도 될만치 아주 깨끗히 비우셨더군요.
세상에...

내가 짬뽕을 다 먹고도 한참이 지났건만
볼일을 보러 밖으로 나가신 노스님께선 들어올 생각도 안하시는지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겁니다.

"이젠 그만 계산하셔야지요?"
"예...얼맙니꺼?"
"딱 사만 오천원이네요."

'아차...돈이 모자란다. 이런 낭패가...어떡하지?'

"왜요? 돈이 모자라서 그래요?"
"아따, 아지매...귀신이네예...우째 그렇게 잘 맞히능교?"
"스님 같은 손님이 어디 한둘이라야 말이죠..."

"우짜지예? 우야먼 좋겠습니꺼?"
"그야 뭐...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떼워야죠..."

"워낙에 고가의 몸이라 몸값이 좀 비싼편인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수중에 돈도 없는 무일푼 땡땡이 중이잖아요."
"그렇지예...?"

참으로 낭패라도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지매는 한술 더 뜨서 방문을 홱 열어제치더니 안으로 들어가 얼른 이부자릴 펴는게 아닙니까.

"뭐해요? 얼른 안 들어오고..."
"예...지금 가니더..."

"너무 그렇게 우거지상을 짓지 말아요, 나도 사람인데..."
"....."

"만약에 스님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번만 만족시켜 주신다면 가실때 노자를 충분히 챙겨드리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아마도 오늘은 이곳에서 계셔야할겁니다."

'딱 두 번이라...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만...
우째 계획된 일에 내가 말려든 것만 같아서 조금은 껄쩍지근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오후 늦게서야 그 식당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식당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노랗게 보이더군요.
여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누구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짧은 해에 서둘러 이곳을 빠져 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죠.

"스님! 잠시만요..."
식당을 나와 막 발길을 돌리려는데 아지매가 나를 불러 세우더군요.

"와예?"
"이거...이걸 흘리고 가시길래..."

뭔가 싶어 받아 보니 노스님의 위급할 때 풀어봐야한다는 그 보따리였습니다.
아깐 분명 없었는데...

일단은 그 식당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애써 재촉하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한참을 걸어오니 시원한 나무에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어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저곳에서 잠시 쉬어야지.'

나무 그늘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하다 아지매에게서 건네받은 보따리를 쳐다보았죠.
'이건 뭐지? 어차피 노스님도 안계시니 한번 열어볼까?'

순서대로라면 빨강 주머니가 먼저이니 이것부터 풀어보자 싶어
빨간색 주머니를 열어 보았죠.

그 속엔 사만 오천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값이 사만 오천원이었으니...
이런 쓰벌...

괜히 잘먹고 기운만 빼고 왔다는 생각을 하니 아깝기도 하였지만
대중으로부터 보시를 받았으면 베풀 줄도 알아야겠기에...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하였지요.

'그나저나 이 노랑 주머니는 또 뭐지?'

위급할 때만 열어보는거라는데 지금 열어보면 안될...낀데...
그래도 될라나...?

아마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뇌리를 팍 팍 스치면서 나를 유혹하는데...
그래, 되겠지...될끼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열어나 보자...

더이상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노란색 주머니를 열었더니
그 속에선 지난주에 발표된 로또 복권이 한 장 들어 있었습니다.

에게...겨우 로또 한 장...
차라리 만원짜리라도 한 장 들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복권이 당첨이 되었던 안되었던 나하곤 별 상관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냥 주머니에다 도로 넣어 두었죠.

날은 점 점 어두워지고 인적도 없는 곳이라
서둘러 하산하려고 정신을 집중하여 열심히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까지 내려왔습니다.

무심코 가게 앞을 지나다 로또란 간판이 두눈에 크게 들어와서
호기심어린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지난주 당첨 번호를 확인해보니 이런...세상에나...

사십오억짜리 로또에 당첨이 된게 아닙니까.
그것도 당당히 일등으로...

저도 사람이기에 순간적으로 갈등이 생겼죠.
이 돈을 다 찾아서 좀 더 넓은 도량으로 옮길까?
아님, 노스님을 찾아 돌려 주어야 하나...?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갈등으로 고민하다 한가지 결론을 내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주머니를 열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알려주는대로만 하면
더이상 갈등도 후회도 없을 것만 같아서 얼른 파랑 주머니를 끌렀죠.

'그래, 어차피 이 주머니가 마지막 주머니이고
나의 운도, 나의 원력도 여기에서 판가름이 날 거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마음이 홀가분 하였습니다.

그 주머니 속엔 한장의 종이가 들어 있었고,
종이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20분 안에 인터넷 접속후
약사 기도도량 관음사 ( http://cafe.daum.net/hirashi2010 )를 검색하고
물어 물어서 사월산....일월사...를 찾아가라고...

사월산?
도대체 어디에 있는 산이지?

처음 듣는 산이름인데...
알 것 같기도 하고...모를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피시방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고...
내가 사용하는 폰은 무선 인터넷도 안되는데...

그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나 보자.
묻는다고 세금이 붙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마침, 지나가는 행인이 있어 물어 보았죠.

"사월산요? 지금이 삼월이니까...사월이라면...여기서 한참은 더 가야 하는데...
길이 험해서 차를 타고 갈 수도 없고...무작정 걸어서만 가야하는데요...
이길로 쭉 가세요, 한참을 가다 보면 나올겁니다."
"아,예...감사합니더..."

아차...얼마를 더 가야하는지 안물어봤다.
한 시간을 가야하는지...두 시간을 가야하는지...

한참이라면 그게 이만큼인지...요만큼인지...
아님, 저만큼인지 잘모르겠다.

에휴...가자!
어차피 정처없이 떠도는 몸...
가다 보면 길도 나오고 사월산이든 오월산이든 뭐든 다 나오겠지...

대략 몇 시간 정도인지 짐작은 할 수 없으나
한참을 걸은 후에 산 하나가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 산이 그 산일까?
그 산이 이 산일까?

이미 날도 어두컴컴해져서 산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만 크게 들려왔습니다.

허허허...
말그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젠 어디로 가야하지?
도대체 일월사가 어디에 있는거지?

그러고 서 있는데 어디에선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산을 향해 계속 걸어가세요, 그러면 불이 켜진 곳이 바로 일월사에요."

"고맙..."
주위를 둘러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는데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니는 또 누고?"
"....."

상대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말하기 싫은가?
하기 싫음 말고...

어두운 산길을 걷고 또 걸어서 산중턱 쯤에 다다랗을 무렵
저만치에서 희미한 전등 불빛 하나가 아른거리는 것입니다.

'저 곳인가?'

"허허허..어서 오시게."
"누구신지요?"
"이사람아, 나도 몰라보는가? 우리가 어찌 남인가?"
"그래도 누구신지..."

아...내가 찾던 바로 그 노스님...

"드디어 만나게 되네예,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더.
이곳이 사월산 일월사가 맞습니꺼?"

"오늘이 사월 일일이니...대충 맞을걸세...
자, 자...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피곤할테니 푹 쉬시게..."

방으로 들어온 나는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날이 환하게 밝아올 때에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죠.

하지만, 일어나서 둘러보니 주위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집도... 절도...노스님도...

그저 한 쪽 줄이 끊어진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하얀 간판 하나가 눈에 띄더군요.
어떤 간판인지 궁금하여 앞쪽을 돌려보니 그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만우절]

소나무에 아무렇게나 걸려서
나를 향해 '메롱~메롱~' 하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간판...

그래, 사월산도...일월사도 아닌...
오늘이 바로 만우절이었던 것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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