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12/01, 조회 : 1969
제목  
 나의 위치

나의 위치 / 임정수




언제나 내가 서있는 위치를 잘 고수해야만 한다.
과거에는 어떠했고 지금은 어떠하며 앞으로는 어떤 위치에 서 있어야 할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위치란 사회에서건 군대에서건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눈을 감을 때까지는 자신만의 위치를 잘 고수하면서 살아가는게 인생이듯
자신만의 개성과 뚜렷한 주관이 나타나는 위치를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사회 생활이 서툴다.
사회 생활이 서툴다는 것은 그만큼 적응 하기가 힘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다들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정말 어렵고 힘든다.
그렇기에 사회 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 적응을 해나가기란 여간 힘드는 게 아니다.

전역을 한지도 어느덧 십오년이 지났다.
그래도 현역 시절엔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는데...
구타가 난무하던 사병 생활을 접고 하사관으로 장기 근무를 하면서 수많은 에피소드 또한 많았다.

통신 주특기를 부여받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대내의 종합 훈련이나 검열 뿐만 아니라
유,무선 통신 분야에서도 거의 완벽하리만치 소화를 잘 해내었고
눈치와 경험에 의한 분위기 파악이 빨라 나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 고수하게 된 것도 빨랐다.

내가 여러부대를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부대는 공병 부대이다.
그야말로 노가다(막노동)를 주업무로 하는 부대인 것이다.
물론 나는 주특기가 통신이다 보니 통신 업무만 전담하였지만,
업무를 이끌어 나가다 보면 공병 주특기를 가진 다른 간부들과의 마찰 또한 많았다.

어쩌면 극락과도 같은 통신 업무와는 달리 하루에도 수천 번이나 지옥을 왕래하는
공병 주특기와는 당연히 차이가 있었다.
늘 세멘트 가루를 덮어쓰고 생활하는 그들에게 통신 주특기란 그저 가소로울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부대 생활에 아주 빠르게 적응을 해나갔고 차츰 나의 자리와 위치를 사수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다름아닌 차량 배차 문제에서 부터 나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는데,
군대란 특수한 조직이라서 반드시 명령 계통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업무상 차량이 필요해서 사용하고자 할 때엔 하루 전날에 수송부에 미리 알리게 되고
그러면 수송부에서 다음날 아침 일찍 정작 과장의 결제를 받아서 배차를 내어주게 되는데,
정작 과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차 승인을 거부하게 되면 그날은 부대 밖으로 차량을 통해 움직일 수가 없다.

나는 전역을 하는 그날까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디 가서 상급자나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아부를 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나만의 고집 같은건지도 모르겠다.

원래 성격이 단순해서인지 그런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한번 좋으면 상대가 나를 배신하거나 내곁을 떠나기 전까진
내가 먼저 상대를 실망시키거나 배신하는 일 따위는 하질 않는다.

언젠가 정작 과장이 부임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휘어잡을 요량으로 배차 승인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내가 아니었기에 한바탕 맞붙었던 적이 있었다.
주먹을 휘둘러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싸워서 이기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날은 하루종일 업무를 보질 않았고 춘천댐의 청아한 물줄기가 흐르는 부대 밖 한 횟집에서
통신병 몇 명을 데리고 나가 오후내내 술만 퍼마시다 결산 시간에 맞추어 들어 간 적이 있는데,
한참 결산이 진행 중일 때에 술냄새를 확 풍기며 벌건 얼굴로 CP(대대장실)로 들어갔더니
다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미 내가 보고할 차례가 지났음에도 나는 내자리를 잡고 앉아 누군가의 보고 내용을 중간에서 가로채며
통신 업무에 대해서 보고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간단히...

"통신 사항 보고드리겠습니다."
이미 알딸딸하게 취한 몸으로 조금은 혀가 꼬인 큰소리로 좌우를 슬쩍 둘러보며 보고를 하니
무슨 실수라도 하질 않을까하는 두려운 모습으로 다들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계속 이어 나갔다.

"금일은 통신 업무를 하나도 보질 못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분명 통신 사항을 보고하겠다고 해놓고선 보고할 게 없다고 하니 대대장으로선 의아해할 따름이다.
"아니, 통신 사항을 보고한다고 해놓고선 보고할게 없다니 대체 어찌된 영문이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계급이 낮다고 깔보며 반말을 했겠지만
대대장은 직책과 군 경험을 존중해주는 아주 양반 중의 양반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 같다.

"대대장님! 오늘 통신과 업무는 이러 이러한 업무를 보아야 하는데요,
조~또... 차량을 배차해줘야 업무를 보던지 말던지 하지,배차를 안해주니 어떻게 업무를 보겠습니까?
성질 같아서는 어떤 새끼가 배차를 안내주는지 찾아내어서
칼로 배를 갈라 창자를 꺼집어 내어 그걸로 목을 졸라 죽인 뒤 도끼로 대가리를 확 쪼사서
스트로우를 꽂아 골을 쪽쪽 빨아먹고 싶은 심정입니다."

내가 상급 부대인 여단에서 대대로 쫓겨 내려올때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대대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미 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터라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올라도 함부로 내뱉질 않았다.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물었다.
분을 삭히기 위해 담배 연기를 길게 들이 마신후 내뱉었다.
정작 과장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움찔거렸고 다른 간부들은 다음엔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
내심 기대를 하고 있는 표정들이다.

순간, 대대장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변하고 있었다.
얼굴 색이 하얗게 질렸다가 빨갛게 상기 되었다가 다시 시퍼렇게 변하는 걸 보며
울그락 불그락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게 느껴진다고 생각되었다.

하긴, 담배라면 질색을 하는 대대장으로선 다른 곳도 아닌 CP안에서 그것도 결산 회의 중에
담배를 꺼내어 물었으니 내가 얼마나 거만하고 건방져 보였겠는가.
하지만 그런 이유로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통... 통신 과장요, 진정하세요."
대대장이 일어나 내게로 걸어오더니 애써 진정시키려 한다.
원래 나의 직책은 통신과 선임하사관이다.
하지만 대대급이라 장교는 인가에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나를 부를 때 통신과장이라 불러주기도 한다.

특히나 지금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을 때엔 나를 진정시키며
최대한 열받지 않게 하려고 더욱 <통신과장>이란 직함을 강조하면서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대대장님! 오늘 정말 많이 참는 겁니다."

그러면서 벌떡 일어나 호주머니에서 실탄 한발을 꺼내어 대대장의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피우던 담배를 바닥으로 휙 던져버리곤 밖으론 나갔다.
그것도 밖으로 나가자마자 CP 출입문을 세게 닫아 버리면서...

'쾅~'하는 둔탁한 문 소리가 들리며 CP 옆 행정실에 있던 행정병들이 무슨일인가 싶어 얼른 뛰어왔다.
잔뜩 화가난 나를 보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행정실 안으로 들어들 가버렸다.

CP 앞에서 밖을 내다보며 서있는데 안에서 대대장의 화난 소리가 새어나왔다.
잠시후 정작 과장만 남고 각 중대장들과 참모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이다.
중대장들이야 같은 장교로써 정작 과장이 깨어지니 좋을리가 없을 것이고
똥 씹은 얼굴로 나를 본들 어찌하겠는가.

밖으로 나오다 나를 본 군의관(의무 과장)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연신 잘했다고 한다.
사실 군의관 또한 차량 배차가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아 피해를 본 사람 중의 한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소 군의관도 나처럼 특수 병과이기에 장교로써의 대우를 제대로 받질 못했고
그것을 터트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나름대로 불만이 쌓였던 터였다.

내가 이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빽이 있었던 건 결코 아니다.
나는 돈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고 빽또한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기에
누군가가 업무상으로 따지며 파고 든다면 자신만만하게 맞대응할 수 있는게 전부이다.

내 업무를 확실이 알고 있다면 그것은 내자리를 확실히 지키고 있다는 뜻이 된다.
내자리를 위협받지 않으려면 확실한 나의 위치를 사수하여야만 한다.
그리하여 어느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도록 나만의 개성(?)을 살려두어야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도 적응이 빠를 것으로 본다.

대대장은 부대장으로써의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간부들을 지휘 통솔하여야 하며
각중대장들이나 참모들 또한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으며
자신들이 맡은 바 책무를 다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위치를 잘 찾아서야만 확실한 지휘 계통도 있고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나름대로의 품격이나 대우도 따르기 마련이다.

내가 상급자라고 해서 하급자들에게 함부로 대한다거나 이치에 맞질 않는 요구나 행동을 하게되면
존경은 커녕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긴 걸러버린다.
대우를 제대로 받으려면 비록 하급자라 할지라도 먼저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존중해주고
잘 다독거려서 내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느 위치에서건 내 자리를 함부로 넘보질 못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것은 곧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 할 수도 있는 막중한 뜻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그 사건 이후 각 중대장들이나 다른 참모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매일 중식(점심 식사)후 하루 30분씩 대대장에게 통신 분야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 부대를 책임지고 있는 부대장으로써 통신 업무에 대해 너무나 몰랐었다며
한동안은 통신 교육에 열을 올리기고 했었다.

결과가 어찌되었던 과정이 도리에 어긋났었다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행동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나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성격이 조금 별난 편이다.
언제나 조금 손해를 보며 살아가는 편이라도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때에는 가차없이 일격을 날려버리고만다.

아참,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을 하다보니 한가지 더 생각나는 게 있다.
0 사단 쪽으로 업무상 볼일이 있어 갔다가 우연히 0 사단장 전용 낚시터라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낚시를 하다보면 고기가 많이 낚일 것 같은 생각에 멋모르고 들어가 낚시를 하게 되었는데,
누군가 목 좋은 곳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며 우릴 지켜 보았지만
낚시를 온 낚시꾼이려니 생각하면서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낚시 도구는 없었지만 대용품은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었다.
P-77 안테나에 사용되는 긴 안테나 지지체에 긴 안테나를 연결하여 낚시줄만 연결하면
그야말로 훌륭한 낚시대가 되는 것이다.

긴 안테나가 얼마나 튼튼한지 어떤 곳에선 거의 1미터나 되는 잉어를 낚은 적도 있다.
아무리 큰 물고기가 걸려도 휘어졌으면 휘어졌지 부러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항상 낚시줄과 낚시 바늘은 필수적으로 휴대를 하고 다녔다.

오전내내 기다려도 붕어만 몇마리 잡아놓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던 그사람(먼저 와서 낚시를 하던 사람)은
들어온지 몇 시간도 되질 않은 내가 월척을 척척 낚아내니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다.
내게로 걸어온 그는 다짜고짜 나가라고 소릴 질러댄다.
내가 가긴 어딜간다고...

화가 잔뜩 난 그사람은 어딘가로 호출을 했고,
잠시후 누군가 허겁지겁 뛰어 오더니 이곳은 사단장의 전용 낚시터란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내가 아니었기에 마지막으로 한번 만 더 낚시를 던지고 가겠노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리곤 운전병에게 차로 가서 세멘트 하나를 들고 오라고 일렀다.

잠시후 세멘트를 뜯어 낚시터에다 쏟아 부었다.
워낙에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근처에 있던 그들의 다른 일행들도 미처 나를 제지할 여유가 없었고
그곳엔 한순간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흘렀다.

다들 난리였다.
왜 여기에다 세멘트를 쏟아 붓느냐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이다.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딱 한마디 했다.

"우리 공병대는 이렇게 낚시를 합니다."

어느 부대 소속이냐고 해서 굳이 속일 것도 없고해서 사실대로 말해줬다.
군대를 나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알겠지만,
군용 차량엔 소속 부대와 몇호차인지 차량 넘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뒤돌아 서 나오는데 어떻게 세멘트로 물고기를 잡느냐고 하길래,
이렇게 세멘트를 풀어놓으면 세멘트 특유의 독한 성분 때문에 물고기들이 이것을 먹으면
몸 속에서 가다마리(응고?)가 되어서 기절하여 떠오르면 잠자리채 같은 뜰채로 건져내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더니 아무말도 못한다.

누군가가 왜 건지지 않고 그냥 가느냐고 해서,
뜰채를 가져 오질 않아서 그냥 가노라며 좀 있다 물고기들이 떠오르면
내 생각하면서 많이들 건지라고 말하곤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물론 부대로 복귀하니 미리 연락을 받은 대대장이 우리 통신과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많이 잡았느냐고 해서 잡아온 물고기들을 보여주며 매운탕해서 한잔 하자고 했더니
껄껄 웃으며 간부식당으로 가잔다.

언젠가 부대대장이 우리 부대로 전입을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통신과 사무실로 찾아와 그동안 고마웠고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노라며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 아닌가.

가면서 하는 말,
이 부대에는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고
그나마 내가 제일 업무처리를 잘하고 존경스럽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우리 대대로 갓 부임온 소대장들 중엔 올 때는 몰라서 그냥 넘어갔어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갈 때엔 꼭 나를 찾아와서 신고식(?)을 하고 가곤 했었는데,
내가 그다지 악명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업무엔 확실하고 대인 관계도 원만해서 그런게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다사다난했던 2008년도 다 지나고 이제 12월 한달만 남았다.
년초에 세웠던 계획은 잘 진행 되었는지...
그동안 무엇을 했으며 아쉽고 미비된 사항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차근차근 정리하며 아쉬움으로 한 해를 접어야겠다.

희망찬 새해가 밝아오면 나는 과연 어떠한 위치에 서있을까?
지금껏 걸어온 길은 어디였으며 앞으로 걸어야 할 인생길은 또 어디란 말인가.
시간은 말없이 흐르고 흘러 또다른 새해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정작 나는 아쉬움으로 가득한 안타까움을 어루만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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