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8/11/27, 조회 : 2005
제목  
 증조 할머니의 참빛

증조 할머니의 참빛 / 임정수





어느날
증조 할머니께선 참빛으로 머리를 빗고 계셨다.

맑은 소주병에 가득 든 피마지 기름을 손바닥에 따루어
조금씩 머리를 쓰다듬듯 피마지 기름을 바르시며
참빗으로 정성스레 머리를 빗고 계신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 오는 한겨울일지라도
꽁꽁 언 얼음을 깨어가며 손수 물을 길러오시어
찬물에 머리를 감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백수를 바라보시는 연세에도 아랑곳 않고
찬물로 머리도 감으시고
목욕까지 하시던 증조 할머니를 곁에서 보아 온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추운 겨울이면 깊은 산 속 계곡으로 들어가
꽁꽁 언 얼음을 깨어가며 물 속에 들어앉아 있다가 나오곤 한다.

그 모든 것이 증조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렇게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때론 구멍뚫린 문풍지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면
어린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을려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곤 했었는데,
어느날 증조 할머니께서 찬물로 목욕을 하시는 걸 본 후론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운수사까지 뜀박질을 하며 몸을 단련했었다.

햇볕이 따사롭게 쏟아지는 어느날 오후,
증조 할머니께선 대청 마루에 앉아 참빗으로 머리를 빗고 계셨고,
그시절엔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머릿니로 고생을 하던 때라
참빗으로 빗질을 하면 어김없이 머릿니가 서너마리씩은 끌려나왔다.

증조 할머니께선 어떠한 연유로 피마지 기름을 바르셨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때는 지금처럼 모든게 부족하고 아쉬움이 많을 때였다는 건 분명하다.

요즘같이 편하고 좋은 세상엔 뽀송뽀송하고
보습 효과와 미용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영양 크림 같은게 넘쳐나지만,
그시절엔 피마지 기름 하나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지금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되어 되돌아갈 순 없어도
아득한 추억의 저편으로 잊혀져 가는 참빗이 그립다.

나의 기억 속에 자리잡은 증조 할머니의 참빗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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