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문

이름  
  임정수(작성일 : 2004/09/22, 조회 : 2052
제목  
  따뜻했던 지난 겨울

따뜻했던 지난 겨울 / 임 정 수



지난 겨울은 산 속에서 맞이했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많은 사람이 겨울 산행을 싫어하지만 나는 이곳 금동산의 겨울이 좋다.
차가운 겨울의 기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혹독한 추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좋기 때문이다.
내가 찾는 금동산엔 개가 세 마리 있다.
산 속에서 풀어놓고 키우기 때문에 야생의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온 산을 헤집고 다닌다.
내가 금동산에 도착하여 밤이건 낮이건 산에 오를 때면
그중에 제일 큰 개(매리)는 나의 승용차 옆에 앉거나 주위를 맴돌며 밤새 지킨다.
나머지 두 마리중 한 마리(털보)는 앞장서고 한 마리(똘이)는 내 뒤를 따라서 올라간다.
앞장서는 털보는 첨병의 역할을 하며 멧돼지나 너구리가 근처에 있으면
먼 곳까지 따라가서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쫒아 버린다.
간혹 돌아오는 길에 하얀 산토끼나 어린 너구리를 물고 오는 때도 종종 있다.
그런 것들은 밤참으로서 털보나 똘이의 훌륭한 야식이 되는 것이다.
털보가 낯선 짐승들을 쫒아내고자 멀리 갔을 땐 내 뒤를 따르던 똘이가 사주 경계를 한다.
평소에 교육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말귀를 알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알아서 행동한는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만 하다.
어찌보면 왠만한 사람보다도 더 똑똑한 것 같다.
산을 오르는 도중에도 앞장서던 털보가 자주 뒤돌아보며 내가 쳐진다 싶으면
앉아서 기다렸다 다시 앞장서곤 한다.
세 마리 모두 암컷인데 털보는 지난 겨울에 이쁜 새끼를 두 마리 낳아
나를 따라 산에 올라갔다가도 새벽 두시만되면 어김없이 하산하여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다시 내가 있는 정상까지 달려오곤 했었다.
사람도 산후에 몸조리를 잘 해야하듯 나를 따라와 내 곁을 지키는 털보를 보니
너무나 안스러운 마음이 들어 털이 북실북실한 베를 재단하여 털보가 깔고 앉도록 만들어 주었다.
따뜻하고 마음에 드는지 털보는 내가 만들어준 베 위에 깔고 앉아 겨울을 나게 되었다.
털보가 샘이 많고 시기심이 많아 두 마리 다 만들어 주면 싸울 것 같아 털보만 만들어 주고
똘이는 만들어 주지 않았다.
똘이에게는 낙엽 속에 푹 파묻혀 밤을 지새울 수 있도록 낙엽을 많이 긁어 모아 주었다.
내가 손도끼로 삼십센티 가량이나 되는 두께의 얼음을 깨고
알몸으로 계곡의 물 속으로 들어가 앉아 있으면 털보와 똘이는 언제나
내 옆(근처의 바위 좌,우)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두 마리의 충견은 나의 특별 경호원(?)이 되었다.
비록 개이지만 말귀도 잘 알아 듣는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는 말처럼 평소에 잘 대해 줘서인지
금동산의 개들은 거짓말처럼 나를 잘 따른다.
세 마리 다 짐승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들이 마치 살아있는 부처처럼 느껴진다.
금동산엔 풀어놓고 키우는 토종닭도 있다.
닭들은 아침이면 온 산을 다 누비며 곳곳에다 알을 낳기도 하고 지나가는 뱀이라도 발견하면
총 출동하여 서로 먹을려고 물어 뜯고 난리다.
언젠가 한번은 닭들이 뱀을 잡아먹는 광경을 보고 카메라로 찍어서 사진으로 현상해 놓은 적도 있다.
그래도 해가 지는 밤이면 한 마리도 빠짐없이 보금자리로 찾아드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다.
어떤 때에는 나의 충견들이 뭔가를 먹다 땅을 파고 먹이를 묻어 놓으면
닭들이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개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마구 파헤쳐 먹이를 찾아 먹었다.
개들도 낯선 짐승들이 자신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거나 먹이를 슬쩍하면 사나워지지만,
함께 사는 닭들에겐 관대하여 자신들의 먹이를 훔쳐먹어도 보고도 못본체 봐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내가 고기덩어리를 던져주면 닭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먹기도 한다.
이러니 어찌 살아있는 부처라하지 않겠는가.
생김새가 다르고 말을 못할 뿐이지 행동 하나 하나를 지켜보면 마음이 얼마나 깊고
따뜻한지를 느낄 수 있고 내게도 겨우내 추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일종의 텔레파시라고나할까
굳이 말을 하지않아도 생각과 느낌으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고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전달하고 그에따른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걸 보면
정말이지 개 이지만 왠만한 사람보다도 훨씬 낫다는 생각이든다.
밤 낮을 가리지않고 언제든 기분이 내키는데로 산행을 하고있는 나로선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일망정 함께 따라주는 개들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다.
지난해에 내린 눈이 다 녹아서 없어진지도 오래지만 아직도 내 가슴이 따뜻한 것은
그해 겨울 생사고락을 함께 한 충견들과의 따뜻한 동행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은은하고 진한 한잔의 칡차를 마시면서 올 겨울을 기다려야겠다.
올해도 포근하고 따뜻한 눈이 내리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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