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방 입니다 ..

무한질주

무한질주 / 임정수



밤 9시 30분쯤 되었을까...

장마철이라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도저히 낚시의 유혹을 뿌리치질 못하고
빗속을 뚫으며 울산의 진하 해수욕장으로 가려고 남창을 들어서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가 미친듯이 도로가로 뛰어 나온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하며...하얗게 질린 듯한 얼굴...
맨발로 뛰어나온 여자는 그야말로 누가보면 미친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고,
하얀 소복차림이었다면 그걸 본 사람은 그의 기절을 하지 않았을까...

빗물인지 땀범벅인지는 몰라도 여자가 두팔을 벌리며 큰대자로 서서 차를 가로막는다.

순간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사,살려주세요..."

어찌나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던지...
차를 세우자마자 여자는 조수석의 문을 열더니 뛰어 오른다.

"어서 가요...어서요..."
응급결에 차를 출발하였다.

무슨일로 남자는 잡으러 다니고 여자는 숨을려고 했는지 알수는 없지만,
부부싸움에 재수없게 말려든 것이라 생각하니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사이드밀러로 뒤를 봤지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녀가 차를 탔던 곳에서 점차 멀어지자
뒤를 돌아보던 그녀가 앞쪽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몇살쯤 되었을까?'

겉보기엔 이십대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데,
아마도 사소한 일로 신랑하고 한바탕 싸우고 나온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면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비록 비에 젖어 머리카락이 헝컬어지긴 했어도 그녀가 무척 예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고마워요..."
"예...뭘요..."
"어디까지 가세요?"
"예..저는 남창 강둑까지 갑니다만..."
"아...잘 되었네요. 다행이에요..."

그녀가 돌아갈 때를 생각해보니 아주 가까운 거리라 판단되었던 모양이다.


"본네트에 수건이 있으니 꺼내서 좀 닦으세요."
"예..."

그녀가 본네트를 열어 수건을 꺼낼수 있도록 천천히 달렸다.
꼬불꼬불한 길이 많고 비까지 내려서 어차피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저 안으로 쭈욱 들어갈건데...같이 가시겠어요?"
"예..."
서서히 속도를 줄여 둑길로 접어들었다.

중간쯤 둑길로 가다 물었다.
"야심한 밤에 저 안쪽까지 같이 가도 겁나지 않으세요?"
"예? 조금..."

"그럼, 여기쯤에서 세울까요?"
"아뇨...혹시라도 다른 차가 오면 돌리지도 못하잖아요."
"예...하긴..."
그러면서 기차가 다니는 둑길의 끝까지 들어갔다.

만약에 아베크족이라도 들어온다면 차를 돌리기 쉽도록 한쪽에 주차하였다.

"저...여긴 무슨 일로...?"
"아...낚시를 왔습니다. 밤낚시요."
"예..."

"낚시가 잘 되는 곳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건 올때마다 꼭 월척은 낚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낚시가 잘 되는 곳이잖아요."
"허허허..그게 아니라...오늘은 낚시를 꺼내기도 전에 이렇게 월척을 낚았잖아요."

"예?"
그녀를 쳐다보며 그녀가 월척이라고 하자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호호호..."

둘이서 마주보며 웃었다.

"춥죠? 히터라도 켤까요?"
"아뇨...괜찮아요."
"추우실텐데 히터라도 켤께요."
"....."

별로 춥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위해서 일부러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었다.

"나이를 묻는게 실례인줄은 알지만 궁금해서요..."
"예? 아...이제 스물아홉이에요."
"그렇군요...근데, 무슨 일로 이렇게..."
"싸웠어요...신랑하고..."
"그럴 것 같았어요."

차창밖을 응시하며 흐르는 강물을 보는 그녀가 애처로웠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가 아주 밝은 성격이란걸 알 수 있었다.

'하긴...구김살이 없고 밝은 성격이기에 이남자 저남자에게 웃으며 얘길 했을 것이고
그게 꼴보기 싫었던 신랑은 문제삼고 트집을 잡았는지도...'

더이상 묻는게 이상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배고프죠?"
"....."
"아직 저녁 전이라면 빵이라도 드실래요?"
"예? 아뇨...괜찮아요..."

주위엔 동네가 없기도 하지만,
식당이나 편의점에라도 가려면 그녀를 태웠던 곳으로 가야만
식당이나 편의점이 있기 때문에 나갈 수도 없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남창이란 동네가 시골이라면 시골이라서 식당들이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식당엔 찾아가봐야 문이 닫힌지 오래일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뭐, 식당이 없다고 해서 굳이 편의점에도 갈 필요가 없지만...

어딜가든 지리적 여건을 고려해서 먹을걸 미리 준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쁜 그녀와 금방 헤어지기도 싫었고...

"빵하고 음료수가 있는데 드시기 싫으시면 라면도 있습니다."
"예? 그런것도 가지고 다니세요?"

"예...가스버너를 싣고 다니기 때문에 봉지 라면하고 컵라면 하고 다 있어요."
"호호호..."

가스버너를 끄내어 코펠에 물을 붓고 끓였다.

"이렇게 예쁜분에게 화를 내다니...신랑이 괴팍한가봐요?"
"아뇨..."

"그럼...신랑이 다른 남자 만나는 줄 알고 오해라도 한 모양이죠?"
"....."

"하긴, 이렇게 예쁘신데 남자가 없겠어요? 지금도 만나고 있는데..."
"예?"
"지금도 저랑 얘기하고 있는 중이잖아요."
"호호호..."

물이 끓자 컵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붓고나니 빗줄기가 점점 거세진다.
"비가 이렇게 많이 내려서 낚시도 못하시겠어요."
"아뇨...비가 내려도 낚시엔 별 지장이 없답니다."
"....."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자
얇은 커텐이라도 친 것처럼 창문이 뿌옇게 변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면 뿌연게 사라지긴 하겠지만,
입구쪽에서 한대의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고 비까지 세차게 내려서 창문을 열수도 없었다.

"차가 한대 들어오네요."
"예...아마도 오붓하게 놀러온 모양이네요."
그러면서 시동을 껐다.
"....."

"시동을 켜놓으면 저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껐어요."
"네..."

둑길을 타고 들어온 차는 진흙투성이의 좁은 길에서 몇번의 곡예를 넘더니
차를 돌려 조금 앞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우리앞에서 멈추어 선다.

미등을 끄지 않는 걸로 보아 시동을 켠채로 실내등을 켜놓은 듯 하다.

"뭐하러 왔을까요?"
"예? 하하하..."

조용히 웃었다.
어차피 크게 웃어도 앞차까진 들릴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속삭이듯 조용히 웃었다.

"뻔하잖아요."
"......."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렇게 비도 많이 내리는데...차속에서 울렁거리면 나갈때 애를 먹을텐데...허허허..."
"....."

컵라면을 들어 그녀에게 건네줬다.
"이젠 다 됐겠네요."
"예...잘먹을께요."

"이렇게 컵라면을 먹으니 생각나는군요."
"예?"

"자동차 전용 극장에서 말입니다..."
"....."

"자동차 전용 극장엘 가보면...대부분 성인영화를 보잖아요."
"....."

"그곳엔 컵라면을 파는 곳이 있는데요...장사가 아주 잘된답니다."
"자동차 전용극장인데 컵라면이 잘 팔리다뇨?"
"에이...알면서 모른척 하시는거 아니에요?"
"정말 모르는데..."

"뻔하잖아요...대부분 컵라면은 먹질 않아요."
"......."

"지금처럼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면 창문이 뿌옇게 되는데...
그러면 밖에선 내부를 볼 수 없으니 맘놓고 할 수가 있거든요."
"......."
"컵라면은 거의 먹질 않아요, 나중에 갈때 버리는거죠."

"직접 본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알아요? 그러는줄..."
"하하하...차 속을 본 적은 없지만 차가 울렁거리니까 알수는 있죠."
"아..."

"어떤 차들은 깜박이가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크락숀을 울리는 차도 있어요."
"....."

"저 차도 좀 있음 울렁거릴거리니까 한 번 보세요."
"....."

컵라면을 거의 다 먹을즈음 앞차가 심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벌써네...젊은 사람들이라 빠른 모양이네요.하하하..."
"....."

"보세요, 미등을 끄질 않아서 차가 흔들리니까 그대로 다 알 수가 있잖아요."
"네..."

컵라면을 다 먹고나니 속이 뜨끈뜨끈 하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 한기가 조금씩 몰려온다.

"춥죠?"
"네..조금..."

"시동을 켤려니 우리 때문에 놀래서...앞차에 방해가 될 것 같네요, 조금 있다가 시동을 켤께요."
"네, 그렇게 하세요..."

"앞차에서 누군가 보면 무안해할테니 의자를 제쳐서 뒤로 기대어보세요."

의자를 뒤로 제쳐 몸을 기대자 그녀도 못이기는 척 따라 기댄다.
사실, 빗줄기가 강해서 앞,뒤 차량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무 소리도 들릴리가 없었다.

"손이라도 이리 줘보세요, 제가 잡아드릴께요."
"아뇨... 괜찮아요..."
"겁내지 마시고 이리 줘보세요."

그녀의 한손을 잡아끌며 두손으로 포개었다.
"어때요? 따뜻하죠?"
"네...."

어두운 실내에서이지만 봉긋솟은 그녀의 가슴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어둠속에서도 그런건 어찌나 잘보이는지...

"앞차가 잠잠한걸 보니 이젠 끝났나보네요."
"....."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님, 어떤 상상을 하는 것인지 그녀의 입가에선 짧은 신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며 천둥 번개가 노성을 하고 있었다.
그틈을 타 얼른 시동을 걸었다.

히터를 켜니 그녀가 손을 뺀다.
"조금만 더...잡고 있으면 안될까요?"
"예...?"

조금 전처럼 그녀의 손을 잡아끌면서 두손을 포개며 슬쩍보니 그리 싫은 눈치는 아니다.
그녀도 다른 손을 포개었다.

두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은 모양이 된 것이다.

앞차에선 또 한번 차가 울령거렸다.
"거참...또 하네..."
"....."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고개를 돌려 마주 보았다.
비록 어둠속이지만 그녀의 입술이 촉촉히 젖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면 안되는줄 알지만..."

그러면서 그녀의 머리를 껴안으며 얼굴을 포개었다.
그녀또한 기다렸다는 듯 서서히 안겨오는게 아닌가.

짧은 입맞춤이었다.
그녀의 몸은 벌서부터 달구어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황홀할 수가...

연이은 입맞춤으로 자신감을 얻게되어 다음 단계로 계속 진행했다.

그녀의 손에서 부터 따뜻하던 감촉은 입술과...
어느새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온몸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밤에 야간 등산을 하느라
이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쫓아다니던 입술은 조금도 지칠줄을 모르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찾아 계속 탐색하며 전진하는데,
앞차의 시동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앞차는 서서히 비속을 뚫으며 세상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거...부부싸움에 재수없게 휘말리는가 싶었는데...재수가 영 없는건 아니네요. 하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호호호..."

이젠 굵은 빗줄기에 장단을 맞추어 가며
차도, 사람도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면서 점차 하나가 되어 달린다.

모처럼 자유를 만끽한 그녀의 몸짓은 허공에 춤을 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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